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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 김승규 법무부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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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사진=김춘식 기자

김승규(60) 법무부 장관의 취임 일성은 '인간 존중'이었다. 법무.검찰 행정도 "국민의 편에 선 검찰"을 만들기 위한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김 장관은 또 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범죄 피해자 기본법' 제정 계획을 밝히는 등 각종 제도 개혁에도 앞장서고 있다. 본지 이상언 사회부장이 지난 20일 오후 과천 법무부 청사의 장관 집무실에서 김 장관을 만나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와 검찰의 개혁 방향 등을 들어봤다. 이 자리에는 정병두 검찰1과장과 길태기 법무부 공보관이 배석했다. "뭐든지 물어달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다"는 김 장관의 말로 시작된 인터뷰는 두시간가량 진행됐다.

# "국가안보는 예방이 중요"

김 장관은 부산고검장으로 있던 지난해 3월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임명된 뒤 후배들을 위해 용퇴했다. 그는 당시 퇴임사에서 "국민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검찰 위상을 되새기면 슬픔과 부끄러운 마음에 가슴이 저려온다"는 말을 남겼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 얼마나 이뤄졌다고 보나.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고, 정치권 눈치를 보지 않게 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검찰 독립이 보다 확고히 뿌리내리기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검찰 독립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있어야 하고 둘째, 정치권의 자기 절제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검찰 스스로의 의지가 필요하다.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검찰 독립은 다시 후퇴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 개정.폐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이 심각하다.

"국가안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고 본다. 국가안보는 한번 침해당하면 회복될 수 없는 만큼 예방이 매우 중요하다. 예방을 위한 법적인 장치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존립과 안전을 위협하거나 파괴하려는 개인이나 단체를 처벌하는 '안보 형사법'을 튼튼하게 갖고 있어야 한다. 앞으로 법을 고치는 과정에서 안보 형사법의 공백이 있어선 안 된다. 법무부는 법질서를 유지하고 확립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기관인 만큼 관련 법을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 다만 법을 남용해 인권이 침해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보안법은 국가안위에 관한 중대한 문제인 만큼 국회에서 국민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 정부 들어 일선 검사들이 시민단체를 너무 의식한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검찰권 행사와 관련해 시민단체나 언론 등 여론 주도계층의 건전한 비판이나 충고는 적극 수렴해 제도 개선 등에 반영하고 있다. 다만 시민단체 등을 의식한 나머지 검찰권 행사가 위축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시민단체 등의 주장이나 요구를 경청하되 검찰권 행사의 공정성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인사시스템 개혁"

김 장관은 최근 검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고 지적했다. "'철의 성벽에 둘러싸인 권위주의 집단'이라는 혹독한 평가까지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정의와 사랑은 함께 가야 하며, 정의의 이름으로 인간이 무시돼선 안 된다"며 인간을 존중하는 수사를 강조했다.

-일각에서 "수사가 인품만 갖고 되느냐"는 불만도 제기된다. 인간 존중의 수사를 각별히 주문하는 이유는.

"지난해 3월부터 변호사로서 1년5개월가량 일하면서 검찰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때 검찰 수사를 받은 사람들의 가족이나 변호사가 검찰 수사에 승복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봤다. 또 정의만 너무 추구하느라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일부 검사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마디로 인간에 대한 배려와 인정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피의자나 사건 관계인 등에게 인격적 모욕이나 수치심을 주는 언행이 사라져야 한다. 인품을 갖추지 못한 검사의 수사는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검사의 조건은.

"실력과 인품을 갖춰야 한다.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추고 있으면 절대 무리를 하거나, 상대방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수사를 하지 않는다. 수사하고 나면 당사자들이 담당 검사에게 인사하러 찾아올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실력 없이 실적만 내려다 보니 무리한 수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수사는 결과만 갖고 평가해선 안 되며, 과정에 대한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적법절차를 지키고, 상대방이 승복할 수 있는 수사야말로 진정으로 가치있는 수사다. 검사들이 법률 지식과 과학 수사기법뿐 아니라 인간에 대해 깊이 공부해야 한다."

-인간존중의 수사를 위한 구체적 방안이 있는가.

"인사를 통해 할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인사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실력과 인품이 부족한 검사들을 인지 부서에 배치하지 않겠다. 특히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수사검사뿐 아니라 중간 간부에게도 책임을 물어 자연스럽게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검사가 주요 수사부서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와 별도로 법무부에 감찰실을 설치해 직무 감찰을 강화할 계획이다."

-최근 기소한 사건이 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검찰이 기소하면 당사자는 회복되기 어려운 피해를 본다. 그후 무죄가 됐는데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일본의 경우 자신이 맡은 사건이 무죄 판결이 나면 스스로 옷을 벗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현재 법원의 무죄 판결과 관련해 검찰 내부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정밀 진단을 하고 있다. 검사들이 실적을 내기 위해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닌지, 증거수집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여론에 쫓겨 너무 급박하게 수사한 것은 아닌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 "장관직은 3D 업종"

김 장관은 수원지검장으로 있던 2000년 정기인사 때 서울지검장(현 서울중앙지검장)에 내정된 것을 알고 당시 장관을 찾아가 "건강에 문제가 있어 핵심 요직을 맡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고 사양하기도 했다. "당시에 스스로를 낮춘 게 장관으로 복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겠느냐"는 질문과 관련, 김 장관은 "막상 일해 보니 장관직이 3D 업종"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은.

"검찰.법무 행정의 품격을 높이고 싶다.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잘 살게 하는 게 행정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우선 인사 체계를 개편하고 인사에 인간존중의 철학을 투영시키겠다. 또 수사과학화에도 힘써 인간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수사관행이 정착되도록 하겠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

-지난달 발표한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강화를 위한 종합대책'의 취지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묻지마 살인' 등 강력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평생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떠안고 살아가는 피해자도 많다. 이제 정부가 그런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상처를 위로해줄 때가 됐다. 이번 대책은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들에게 물질적 보상을 해주고, 수사.재판 과정에서 2차적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민영교도소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2006년 준공을 목표로 경기도 여주군에 추진 중인 민영교도소를 세계적인 성공 모델로 만들겠다. 최대한 재소자들에게 자율성과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또 자원봉사자를 재소자들과 연결시켜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고, 재소자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하겠다. 이와 함께 재소자가 교도소 옆에 마련된 공장에서 일을 하게 해 범죄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변상 하고, 가족의 생계를 돕도록 하겠다."

-지난 7월 교도관이 재소자가 휘두른 흉기에 맞아 숨졌다. 교도행정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게 아닌가.

"장관으로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피의자 검거에 나선 경찰관 2명이 피의자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당시 장관 취임 후 처음으로 전국 검찰에 공문을 보내 법치주의 파괴 사범에 대해 엄정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공권력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0년 수원지검장으로 있을 때 재소자들이 교도관들을 고소.고발하는 경우를 흔하게 목격했다. 일부 재소자는 없는 사실도 꾸며내고, 일부 내용을 과장하기도 했다. 앞으로 재소자들이 교도관들을 상대로 고소.고발할 경우 진상을 철저하게 파악해 어느 한 쪽이 억울하게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정리=하재식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 김승규 장관은

온화하고 겸손한 성품이며 '선비형 검사'로 통한다. 선후배 검사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텁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사물을 보는 태도가 진지하다는 평을 듣는다. 서울지검 형사부장 시절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되던 벌과금 징수 업무를 전산화해 고액체납자들의 징수율을 높였다. 1999년 대전법조 비리사건 때 대검 감찰부장으로서 선후배 검사들을 직접 조사하는 악역을 맡기도 했다. 당시 "검사들이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린 일화로 유명하다. 김명규 전 국민회의 의원(15대 국회)이 둘째 형이다. 부인 김미자(55)씨와 3남.

▶1944년 전남 광양 ▶서울대 법대 ▶70년 사법시험 12회 합격 ▶서울지검 형사5부장 ▶목포지청장 ▶서울지검 남부지청장 ▶대전고검 차장검사 ▶대검 감찰부장 ▶수원지검장 ▶대검 공판송무부장 ▶광주고검장 ▶법무부차관 ▶대검 차장 ▶부산고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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