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창'…미아리 집창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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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매매 처벌법이 시행된 23일 새벽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일명 ''청량리 588'' 집창촌에서 경찰관들이 윤락업소를 단속하고 있다. 대부분의 업소가 불이 꺼졌고, 문을 연 곳도 윤락녀가 한 명도 없었다. 박종근 기자

"오늘 밤은 손님이 완전히 끊겨 공쳤어. 에휴…." 23일 0시30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성매매 처벌법이 막 시작된 시각, 서울의 대표적 윤락가 미아리 집창촌은 을씨년스러웠다. 한 업소 주인은 손님의 그림자도 비치지 않자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다. 한시간 전까지만 해도 간간이 유리문 너머로 '삼촌'을 불러대는 윤락녀들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자정을 넘기면서 뚝 끊겼다. 골목길을 가득 메웠던 '삐끼'의 호객행위도 사라졌다.

성매매를 위한 호객행위를 하다 적발될 경우 기존의 경범죄로는 구류 3일 정도로 끝나지만 새 법이 적용되면 성매매 알선행위로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자정 무렵 관할 종암경찰서 조용섭 서장 등 경찰관 100여명이 단속에 나서자 평소 불야성을 이루던 지역은 암흑도시로 변했다. 한 집 한 집 붉은등이 꺼지고 대로변 담벼락의 포장마차에서 새 나오는 불빛만 남았다. 윤락업소 여주인 두세명이 큰길 옆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경찰의 단속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여성 업주는 "누가 오늘 간크게 장사하겠느냐. 오늘은 여자애들이 한 명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가끔씩 집창촌 부근을 지나가는 남성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내려진 업소의 셔터문에는 단전.단수를 알리는 노란 딱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한때 278개였던 이곳 윤락업소 수가 지난달 166개로 줄었고, 9월에는 157개가 됐다. 1500여명을 웃돌던 윤락녀도 하나 둘 떠나면서 900여명만 남았다.

한 업주는 "성매매 단속이 강화된다는 보도가 나간 뒤 이번 주 손님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며 "단속 초기에 걸리면 '모델 케이스'가 될 수 있으니 당분간 숨 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주들의 모임인 자율정화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새 법은 우리 죽으라는 거야. 그러잖아도 경기가 안 좋아 벌이가 시원찮은데…"라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집마다 아가씨들이 보통 10명씩 있었는데 이제는 2~3명 정도 남은 집이 많다"고 말했다.

전국의 집창촌을 폐지한다는 정부 방침에 업소 주인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8개월 전 업소를 인수했다는 한 업주는 "벌금만 3000만원이 넘고, 별(전과)도 4개나 달았다. 장사 된다고 왔는데 아가씨 월급 주고 벌금 내느라 빚만 졌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업주는 "우리 때문에 식당 주인 등 3만명이 이곳에서 먹고산다. 언제까지 단속을 강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답답하기는 윤락녀들도 마찬가지다. 한 윤락녀는 "배운 게 이건데 달리 할 것이 없다. 미아리가 안 되면 주택가 쪽으로 파고들어 계속 이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 법이 시행되면 업주들에게서 받은 선불금을 갚지 않아도 되지만 미아리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은 강요에 의해 성매매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23일부터 한 달 동안 집창촌과 유흥업소 등을 중심으로 성매매를 집중단속한다. 경찰 관계자는 "집창촌의 경우 마약 투여.인신매매.성매매 강요행위 등을 주로 단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수기.민동기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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