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연예인 에이즈 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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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는 처음 세상에 알려진 후 상당기간 편견과 경멸.따돌림의 대상이었다.

1981년 미 연방방역센터(CDC)의 주보(週報)에 최초로 환자발생 사실이 실림으로써 전세계에 경종이 울렸지만 당초 병명은 동성애자 관련 면역부전(GRID)이었다.

처음 보고된 로스앤젤레스시의 에이즈환자 5명이 전원 남성 동성애자였던 탓이다.

사회적 마이너리티(소수자)와 치명적 괴질이라는 두 이미지가 결합해 다수에 의한 '왕따' 내지 의도적 무관심을 부른 것이다.

주류 미국사회가 에이즈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진 것은 병이 워낙 심각한 데다 보통의 성관계.수혈.출산(모자감염).주사 등 다양한 경로로 감염된다는 사실이 차츰 밝혀진 덕분이다.

특히 85년 10월 할리우드 스타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사망하자 미국사회는 에이즈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허드슨 외에도 영국 록그룹 '퀸' 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 미국 최초의 흑인앵커 맥스 로빈슨, 프랑스 사상가 미셸 푸코, 테니스 스타 아서 애시, 무용가 루돌프 누레예프 등 숱한 유명인들이 에이즈에 희생됐다.

전체 환자수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 급기야 빌 클린턴 미 행정부는 최근 에이즈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질병' 으로 규정, 국가안전보장회의(NSC)까지 동원해 대책마련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세계 에이즈 환자는 3천3백60만명이며, 지난 한햇동안 2백2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동안 병의 발원지에 대해 여러 학설이 나왔으나, 이달 초 미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베트 코바 박사가 에이즈 바이러스의 유전변화속도 분석자료를 근거로 '약 70년전 아프리카 서남부 오지에서 처음 바이러스가 출현했다' 고 발표한 것이 정설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에이즈에 대한 과도한 공포나 환자를 무조건 기피하는 풍조는 에이즈 퇴치의 또다른 장벽이다.

에이즈는 혈액.정액.질분비액이 주된 감염원이므로 상처를 통하는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수영장.화장실.애완동물.모기 등을 통해 감염되지는 않는다.

특히 최근 번지고 있는 '연예인 에이즈' 괴담(怪談)은 동성애.에이즈.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배타적 관심과 이질감.호기심.선망.공포가 뒤섞인 천박한 소동의 전형이다.

감염이 사실이 아닌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설혹 감염자가 있더라도 연예인이라 해서 불행의 무게가 일반사람과 다를 리 없다.

오히려 그런 소문에 혹해 본질에서 벗어난 관심을 쏟는 태도야말로 퇴치해야 할 '우리 마음속의 에이즈' 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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