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 문닫기 전에"…진료·약타기 전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의료계 집단폐업을 하루 앞둔 19일 전국의 대형병원들은 미리 진료를 받거나 약을 타려는 환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엄청난 혼란을 빚었다.

동네의원에도 평소보다 2배 가량의 환자들이 몰렸고 대형 약국에도 약을 사두려는 손님들로 하루종일 붐볐다.

한편 집단폐업에 반대해 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인의협의 방침을 비난하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 붐비는 병원〓서울 송파구 중앙병원에는 평소보다 40% 가량 많은 1만여명의 환자가 몰렸다.

이 때문에 진료접수 창구에서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는데 2시간, 진료받고 약 타는데 1시간30분 가량 소요됐다.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의 경우 이날 오전에만 평소의 2배 가량인 3천5백여명이 찾아왔다.

외래약국에는 아침부터 "오늘 가면 약을 탈 수 있느냐" 는 문의전화가 폭주했고 행정팀 직원 6명까지 동원돼 조제에 나섰다. 강진숙(姜珍淑)약제과장은 "한달 뒤에 진료예약한 환자까지 몰려 최고 90일분까지 약을 받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을 찾은 조모(46.여)씨는 "지난달 25일 직장암 수술을 받고 통원치료 중이었는데 병원에서 2주후에나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며 "암이 재발하면 누가 책임질거냐" 며 목청을 높였다.

서울 노원구 상계백병원에선 할머니.할아버지 20여명이 기다리다 지쳐 로비바닥에 드러누운 채 20여분간 병원측에 항의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서울 노원구 원자력병원에서도 1백여명의 환자들이 대기석에 자리가 없자 병원밖 나무그늘에 주저 앉아 병원측의 무성의를 강력히 성토했다.

폐암 말기환자 유모(50.여)씨는 "원래 22일로 예약이 돼 있었으나 이틀 전 병원에서 빨리 오라고 연락해와 오늘 오전 5시에 경북 안동에서 출발, 상경했다" 고 말했다.

그는 "오전 9시30분 진료신청을 하고 11시쯤 진찰을 받은 뒤 오후 1시30분에서야 약을 탈 수 있었다" 고 파리한 얼굴에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뇌에 피가 고여 있어 빨리 대학병원에 가라' 는 동네병원의 진단을 받은 부친(79)과 함께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金모(42.여)씨는 "병원측에서 '현재 입원 중인 환자도 내보내는 판이니 다른 병원을 이용해 달라' 고 말했다" 며 "위급 환자를 거리에 내모는 병원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고 호소했다.

◇ 동네의원.약국 표정〓서울 I소아과의원의 경우 평소보다 2배 많은 2백여명의 환자가 몰려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의사들은 점심식사도 거른 채 진료를 해야만 했다.

주부 신혜라(31.서울 관악구 신림동)씨는 "아들이 수두와 감기가 한꺼번에 걸려 동네병원을 찾았는데 사흘치 약만 지어주고 내일부터 병원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며 "애가 더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 막막해 했다.

서울 종로5가 등 대형약국에도 고혈압.당뇨병 치료약 등을 미리 장만해 두려는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보령약국 관계자는 "지난주보다도 2배 이상 많이 몰리고 있으며 대부분 약을 석달치 이상 사재기하고 있는 실정" 이라고 말했다.

이무영.박현선.김성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