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한은 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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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나뉜지 5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워낙 역사적인 만남이라 어떤 의제나 대화가 오갈 것인가보다 그 회담 자체가 국민 초미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지나친 기대나 낙관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오가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과연 북한이 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중심 지도부가 변할 의지가 있다면 변하는 것이 북한이다.

북한의 최고 책임자 김정일은 과연 변혁의지가 있을까□ 그 해답은 최근 김정일의 공식적.비공식적 중국 방문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정일은 중국 방문기간 중 두 가지 주목할 만한 행동을 했다.

첫째, 그는 중국의 개방정책을 '매우 잘한 일' 로 치켜세운 것이고, 둘째는 그가 중국의 컴퓨터 공장을 방문한 일이다.

이 두가지 사건에 대해 새로운 디지털 경제의 패러다임으로 바라본다면 사뭇 그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다.

중국이 소위 개방정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일견 서구의 자본주의를 따라가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정부가 그렇게도 금기시하던 '정보의 개방' 이 좋건 싫건 시작됐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정보의 개방은 중국이 그동안 견지해왔던 정치적 이념과는 분명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발전하는 중국과 미래의 번영하는 중국을 위해 이는 피할 수 없는 조치일 것이다.

정보의 진정한 힘은 정보 그 자체에서 오는 것보다 오히려 정보의 획득비용(정보비용)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금속활자의 발명 이후 책이 일반에게 쉽게 공급되면서 정보비용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후 타자기와 전신이 합해지면서 일반 사람이 접하기 어려웠던 고급정보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게끔 다시 한번 정보비용은 줄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개인용 컴퓨터가 반도체 기술의 발달로 그 가격이 대폭적으로 떨어지고 그러한 PC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서로가 연결되면서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 즉 저렴한 PC와 인터넷의 만남이 정보비용을 거의 자유낙하하듯이 떨어지게 하는 계기가 됐다.

기존자원(예를 들면 노동력)의 비용은 줄어들지 않았거나 오히려 늘어나는 데 비해 정보비용은 기하학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곧 '기존 자원을 정보로 대체' 하는 조직(기업이건 국가건)이 그렇지 못한 조직에 비해 월등히 효율적임을 말해 주고 있다.

컴퓨터 성능은 인텔의 창시자 중 한명인 모어 사장이 예견한 대로 18개월마다 두배로 늘어나 왔다. 또한 지금의 컴퓨터는 그 가격이 처음 컴퓨터에 비해 무려 2백만분의1 수준이 됐고, 지난 6년간 칩의 가격은 성능대비 70분의1로 줄어 들었다.

이렇듯 급속도로 변하는 컴퓨터 성능과 가격을 제대로 이용하는 조직은 지난 5년만을 계산하더라도 그렇지 못한 조직에 비해 약 1백배 이상의 효율성 차이가 날 것으로 계산된다.

그러한 나라나 기업의 경쟁력이 강할 것은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어떤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는 미국의 번영, 즉 고용안정.저인플레.지속적 성장 등의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이다.

중국은 값싼 노동력으로 버티고 있으나 이는 정보비용이 낮아지는 속도에 비하면 견줄 바가 아니다.

중국도 '정보의 힘' 을 깨닫고 대대적인 개방정책을 쓰고 있다고 보여진다. 만일 중국이 다시 '정보의 문' 을 닫는다면 아마도 부흥의 꿈을 접고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정일이 중국 방문시 한 행동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이제 북한도 지금의 빈곤과 기아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개방' 이며 그에 따르는 '정보의 힘' 을 이용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볼수 있다.

정보의 힘을 이용한다는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정보의 자유, 인터넷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북한에 세계로 향하는 큰 창문을 달아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빈곤에서의 탈출이냐' 아니면 '기존체제의 고수냐' 하는 체제 차원의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이러한 문제를 슬기롭게 풀고 나아가 남북이 함께 B2B 등 전자상거래 문제들을 진지하게 논하는 자리가 이어진다면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통일도 곧 오리라 확신한다.

이상철 <전 한통프리텔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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