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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쇼크 그 이후] 2. 대립하는 두 대북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공무원으로 퇴직한 아버지 朴모(67)씨와 딸(27.회사원)은 지난 14일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심한 언쟁을 벌였다고 한다.

딸이 "북한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반공교육에 우리가 속았다" 고 한 말이 아버지 朴씨를 화나게 했다.

朴씨가 "우리측이 북쪽의 술수에 춤을 췄다. 북한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 고 응수한 것이 논쟁으로 번져 며칠간 서로 말을 하지 않을 만큼 사이가 나빠졌다.

3세대가 함께 사는 金모(52.회사원)씨 가족은 요즘 북한 얘기만 나오면 집안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은 노모(76)는 "빨갱이들은 무조건 때려잡아야 한다" 며 역정을 내고 대학생 아들(21)은 "미국.일본에 놀아난 분단 역사를 끝내고 남북이 힘을 합쳐야 한다" 고 주장한다.

'무찌르자 공산당' 이라는 반공표어가 뇌리에 생생한 金씨 역시 이번 정상회담에서 본 북한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 때문에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을 동포로 보는 시각과, 적(敵)으로 보는 상반된 북한관이 사회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이런 대립은 한국전쟁.무장간첩 사건을 직접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1950~70년대 멸공.반공, 80년대 안보, 90년대 통일 등으로 바뀐 교육을 받은 세대별 시각 차도 존재한다.

PC통신의 남북 정상회담 관련 토론방에서는 '북한은 적(敵)이 아니라 손을 맞잡아야 할 한 민족(ks9412)이다' 등의 시각과 '사흘간 만나 웃고 악수했다고 해서 북한이 변한 것은 없다(lacashu)' 식의 관점 사이에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북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북한 정상 김정일 동무 I LOVE YOU' 등의 친북 사이트와 '북한에 인권의 햇볕을' '북한 인권 시민연합' 등 반북 사이트들이 잇따라 개설됐다.

개혁.진보단체와 반공단체가 각각 상반된 내용의 행사를 준비 중이어서 자칫 대결로 치달을 위험성도 없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경실련 등은 북한에 컴퓨터 보내기 등 민간지원 행사와 남북 민간협력 세미나 등으로 잘못된 북한관을 바로잡는 활동을 펼 계획이다.

이에 반해 우익.반공단체들은 "북한은 아직 남한을 위협하는 실체" 라며 6.25 50주년을 계기로 대대적인 반공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동국대 강성윤(姜聲允.북한학과)교수는 "상반된 북한관의 혼재가 당분간 불가피할 것" 이라며 "북한을 '안보와 협력의 대상' 으로 보면서 참모습을 확인하는 작업과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뒤따라야 한다" 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무영.전진배.박현선 기자

◇ 자문단▶고유환(高有煥.동국대 교수)▶김인회(金仁會.변호사)▶신종원(辛鍾元.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이용선(李庸瑄.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정혜신(鄭惠信.의사)▶최용석(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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