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남북시대] 정상회담 '옥에 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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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분단 55년 만에 이뤄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은 모든 게 극적이고 파격적이어서 온 국민과 전세계에 놀라움과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쉬운 대목들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먼저 '옥에 티' 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평양 순안(順安)공항에서의 북한 환영객들의 태도. 그들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비행기 트랩에서 내릴 때부터 의전행사를 마치고 공항을 떠나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할 때까지 붉은 꽃술을 열렬히 흔들며 '김정일' (金正日)과 '만세' 만 연호(連呼)했지 金대통령의 이름은 한번도 외치지 않았다.

金대통령이 도열한 환영객 앞을 지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외국 정상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자국 정상의 이름만 연호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이 국제적 관례다.

지금까지 '미제국주의 식민지의 수반' 으로만 알고 있던 金대통령을 이름까지 불러가며 환영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어색했을 수도 있지만 매우 부자연스런 모습이었다.

회담 명칭을 둘러싸고 빚어진 혼선은 질책을 받을 만하다.

13일 金대통령과 金국방위원장의 첫 만남을 놓고 정부 관계자와 취재진 사이에는 '정상회담' (북측 용어로는 최고위급 회담)인지 아니면 '환담' 인지의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이어 14일 오전 金대통령과 김영남(金永南)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간 만남의 성격을 규정하는 과정에서도 우리측은 확실한 입장을 정하지 못해 확대정상회담→확대회담→공식면담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이는 회담 형식이나 표현에 대해 북측과 사전 합의를 보지 못해 저지른 실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측이 처음부터 일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우려해 얼버무리려한 측면이 있다.

또 '공식면담' 에 자리한 양측의 불균형한 면면도 지적받아야 할 대목이다.

우리측은 金대통령을 비롯해 각료급 정부인사들이 참석한 반면, 북측은 우리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인사들과 정당 및 대남(對南)업무 관계자들이 나옴으로써 회담 자체의 성격을 일종의 남북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형태로 변형시켰다는 비판도 나오게 했다.

그밖에 평양에서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보도상의 혼란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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