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병역특례 비리 실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병역특례가 총체적 비리에 싸여 있다. 악덕업체가 특례자 인권을 유린하는 고질적 문제점은 물론 ▶벤처기업가의 병역기피▶특례업체와 특례자간의 돈거래▶알선업체.학원의 취업부정 등 비리 유형이 다양해지고 있다.

◇ 불법.편법 동원하는 벤처기업가〓S사를 창업한 金모(29)씨는 다른 벤처의 연구직 특례자로 취직하고, S사 대표에 자신의 부인을 앉혔다.

임원은 특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편법을 쓴 것.

화학업체 D사의 한 임원은 "연초 한 벤처기업가로부터 특례자로 취업시켜주면 전산망과 홈페이지를 확실하게 구축해줄테니 자신의 벤처 일을 병행하도록 편의를 봐달라는 제안을 받고 채용했다" 고 말했다.

벤처 사장끼리 상대편 특례자로 등록해놓고 실제로는 자신의 벤처를 운영하는 '맞교환' 편법도 벌어지고 있다.

특례업체 K사는 아버지가 대표이고, 아들은 특례자로 근무 중이다.

병무청은 "불법은 아니지만 친인척이 연루된 특례업체가 10개사를 넘어 특별관리 중" 이라고 밝혔다.

◇ 일부 알선업체.학원의 취업부정〓지난달 말 서울 구로동 B알선업체 설명회장. 알선업체 관계자는 "5년간 특례만 연구했다" 고 소개한 뒤 "회원의 98%가 취업했다" 고 말했다.

그는 "이력서를 잘 꾸며줄 수 있는 데다 특례업체 사장과의 개인적 연계를 통해서도 취업이 가능하며, 자격증은 입사 후 딸 수 있도록 조치해줄 수 있다" 고 비법(□)을 소개했다.

특례지원자 林모(25)씨는 알선업체 E사에 등록비 9만원 외에 지난 3월 3백만원의 급행료를 냈지만 아직 취업이 안돼 애를 태우고 있다.

林씨는 "E사측이 빨리 취업하려면 특례업체 사장를 접대해야 한다며 급행료를 받아갔다" 며 "하지만 그 뒤에 물어보면 취업사정이 빡빡하니 기다리라며 되레 면박을 주고 있다" 고 밝혔다. 알선업체는 서울에만 10여곳이 성업 중이다.

한달 수강료가 30만~40만원선인 고액 정보통신 학원 일부도 특례업체를 소개해줄 수 있다며 수강생을 끌어모으고 있다.

M학원은 "LG화학기술연구소 등 1백여개의 자매 특례업체를 확보하고 있다" 고 밝혔지만, LG측은 "M학원을 모른다" 고 답했다.

병무청 산업지원과 김재화 사무관은 "알선업체나 학원 등 민간기관이 병역자원을 뽑는 일에 끼어드는 것은 문제가 있어 관계법 개정이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 가짜.엉터리 병역특례업체〓특례지원자 李모(21)씨는 정보통신업체 U사로부터 특례자 취업 제의를 받았다.

회사측은 이미 2명의 특례자를 채용했다고 설명했지만, 본지 취재팀의 병무청 확인 결과 특례업체가 아니었다.

전기기사자격증을 갖고 있는 金모(22)씨는 지난해 7월 특례 배정인원이 늘어나는 대로 편입시켜주겠다는 회사측 설명을 듣고 D사에 취업했다.

영장을 계속 연기해가며 하루 16시간의 고된 근무를 견뎠지만 회사는 지난 1월 특례자 배정이 적게 나왔다며 金씨를 전격 해고했다.

컨설팅업체의 한 관계자는 "나중에 특례자로 편입시켜주겠다고 뽑아 부려먹은 뒤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해고하고, 또다른 특례지원자를 뽑는 물갈이 수법도 나타나고 있다" 고 말했다.

◇ 늘어나는 악덕업체〓직원 17명 중 8명이 특례자인 멀티데이타시스템은 노조를 만든 첫 벤처다.

이상호 위원장은 "월 56만원에 밤샘 근무를 수시로 하는 열악한 근무환경을 참다못해 노조를 만들었다" 며 "특례자들이 노조의 주축이 되자 회사측은 특례업체 지정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가 철회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고 말했다.

벤처 평균임금(중기청 조사)은 1백26만원이다.

H사의 특례자들은 업무와 관계없는 청소를 해야 하고, 체벌을 당하자 노조 설립을 준비 중이다.

K정보통신은 특례자에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월 30만원을 주다가 병무청에 적발돼 벌금을 물자 손해를 벌충해야겠다며 월급을 20만원으로 깎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