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분별없는 국토개발 이제 그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세계적 이중 분화구 구조의 화산으로 '지질학 자연사 박물관' 이자 빼어난 경관, 주변의 숱한 문화유적으로 이름난 제주의 송악산. 지난 5일 제주지법은 송악산에 대해 '중대한 결정' 을 내렸다.

이 산의 분화구를 파헤쳐 대규모 레저타운을 조성하겠다는 개발사업과 제주도지사의 사업승인을 사업승인 이전단계로 되돌려놓은 것이다.

'개발사업승인의 효력을 정지한다' 는 결정이었다. 사법부의 현명한 결정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정부의 관련 부처들이나 사정기관들도 손을 놓고있어 개발사업이 그대로 진행될 뻔한 상황에서 결정적인 제동을 건 때문이다. 이래서 사법부가 존재해야 함을 웅변으로 보여주었다는 생각이다.

제주지법은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예방하겠다' 는 가치판단을 내렸다.

올 연초 가야산 골프장 소송사건에서 법원은 팔만대장경의 보호를 위해 골프장 조성사업 취소를 주장하는 해인사측 손을 들어주었다.

이제 사법부가 '문화재' 만이 아닌 '환경.경관자원' 에 대한 가치에 전향적 관점을 보이고 있다.

송악산 개발사업은 올 연초부터 환경단체만이 아닌 법률전문가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제주도지사의 사업승인이 상당 부분 위법투성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절대보전지구내 시설물의 자의적 해석, 자연공원법 규정 위배, 사업자의 투자타당성 부실 검토, 주먹구구식 환경영향평가 등 문제는 숱하게 많았다.

분별없는 개발사례 가운데 송악산은 빙산의 일각이다. 국토 전역에서 불어대는 개발의 광풍(狂風)앞에 생태계가 무너지고,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다.

개발이익에 눈이 먼 기업과 환경문제에 둔감한 정부.자치단체, 그리고 무계획적인 국토이용제도, 이 삼박자가 빚어낸 문제다.

파행적 개발을 초래하는 토지이용제도를 전면 손질해야 한다. 아울러 개발부처와 지자체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마구잡이 개발을 부추기는 제주 등 각 지역개발특별법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제주지법의 결정은 이처럼 우리 모두의 발상전환을 끌어낼 수 있는 소중한 계기다.

여영학 <변호사.환경운동연합 공익환경법률센터 부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