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 산책] 강원도 벌새터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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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강원도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때가 덜 탄 산과 물과 바람과, 그리고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짙을 대로 짙어진 녹음 하며 대지를 달구는 태양의 솜씨가 이미 한여름이다. 하기야 하지가 열흘 남짓 남았으니 그럴 수밖에.

문막에 들어서자 무엔가 구수한 내음이 끼쳐온다. 코끝을 쫑긋 세워 냄새자락을 밟아가니 섬강 건너 큰골잔등이 아래 벌새터마을(취병1리)이 아담하다.

길옆 채마들에선 장하게 핀 감자꽃이 번들거리는 옥수수와 시절을 다투고, 대추알만한 열매를 굴리고 있는 수박넝쿨도 가뭄에 힘겨워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켠에선 탐스럽게 익어가는 보리밭이 조그만 바다를 이뤄 황금빛으로 일렁이고 있다.

한 천평은 좋이 됨직하다. 실로 얼마만에 맡아보는 고향의 향기던가. 알량한 도회생활을 한답시고 어릴 적 저를 살지워준 어머니 같은 냄새마저 잊고 산 무심함에 가슴이 저며온다.

요즘 같은 철을 일러 보리누름이라 하던가.

때마침 살랑바람이 불어 품고 있던 냄새를 사방으로 흩뜨린다. 하늘나라 조경사가 가위질한 듯 이랑마다 자란 키가 가지런히 곱다. 고갱이로 뽑아올린 이삭들이 까락을 곧추세운 채 통통하니 살이 올라 겨울을 버텨낸 인고의 결실이 대견하기만 하다. 당장 풋바심해도 될성싶은 게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온다.

요즘은 웬만한 시골에 가도 서러울 정도로 보리밭을 찾아볼 수 없지만 예전엔 단순한 곡창이상의 문화(?)공간이기도 했다.

종달이가 알을 품을 무렵이면 얼추 다자라 꼬맹이들에겐 보리피리 공장이요, 처녀총각에겐 물레방앗간 못지않은 은근한 사랑의 나눔터였다. 이러다보니 뭣모르고 개개진 밭 근처에 어슬렁거리다 동네방네 우물가 입방아에 올라 곤욕을 치르는 일도 이따금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 달콤한 추억뿐이랴, 지금이 태산보다도 높다는 보릿고개인 것을. 너나없이 원초적 식본능마저 채우지 못해 시달리던 그놈의 고개-. 한창 농번기인데도 괭이를 들 힘조차 없는 이 땅의 '못난 에미.애비' 들이 밥달라 졸라대는 어린 것들의 보챔에 얼마나 속울음을 지었던가. 눈물 섞인 한숨을 봉초담배에 태워 날리며 퀭한 눈으로 먼산만 바라보던 모습들이 지금도 생생히 눈에 밟힌다.

가진 땅뙈기라곤 삿갓배미가 고작인 살림살이다 보니 일년 내내 골빠지게 농사지어봐야 농자금이야 장리빚이야 떼고나면 빈 됫박뿐, 귀빼고 뭐뺀 마른 당나귀 같은 처지에 이때까지 도대체 먹을 게 남을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찔레꽃 필 때는 고명딸네도 가지말라' 고 했을까.

해서 이때(음력 3~5월)가 되면 산과 들을 쏘다니며 풀뿌리에다 심지어 웬만한 나무껍질까지 모두 싹쓸이해 대는 '모두 메기' 로 보릿동을 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알 밴 칡뿌리나 복령, 산귀래(청미래덩굴뿌리)가 걸리면 대길이고, 무릇도 한 소쿠리면 송기(松肌)와 함께 고아 예닐곱 식구가 며칠은 거뜬히 버텨낼 수 있었다.

이러다 보면 지독한 변비에 걸려 실제 '똥구멍이 째지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고, 또 어쩌다 이웃에서 농주라도 담글라치면 술지게미를 얻어먹고 논두렁을 비칠대는 아이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곤 했다. 이밥에 고기를 놓고도 반찬타령을 해대는 아들놈에겐 다 '영어' 처럼 들릴 얘기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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