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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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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코끼리는 지상 최대의 동물이다. 마른 풀과 나뭇잎, 열매, 나무줄기와 껍질까지 매일 400㎏씩 먹어 치운다. 배설도 많이 한다. 어른 코끼리가 하루에 누는 똥은 100~200㎏.

이 ‘거대한 쓰레기’를 두고 고민하던 사람들은 코끼리 똥에 미처 소화시키지 못한 섬유질이 가득하다는 점에 착안해 ‘코끼리 응가 종이’를 개발했다. 도톰한 한지 같은 질감인데 태국·스리랑카 등에서 생산된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코끼리 똥을 잘 말린 다음, 끓이고 헹구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질 좋은 섬유질만 거른다. 이것을 잘게 잘라 종이죽처럼 만들고 염료를 첨가한다. 체로 거르고 햇볕에 말리면 완성. 만드는 과정에서 냄새나 세균은 사라진다.(김형자, 『똥으로 해결한 과학』)

일본의 동물원에선 ‘코끼리 응가 부적’도 내놓았다. 동물원에서 나오는 코끼리 배설물로 만든 종이에 ‘합격’ 등의 문구를 적어 넣은 것이다. 코끼리처럼 커다란 행운이 들어오라는 뜻이라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코끼리 똥이 음식을 만드는 연료이자 상처를 치료하는 약재다. 나이지리아에 뿌리를 둔 영국 작가 크리스 오필리가 자신의 그림에 코끼리 똥을 사용하는 까닭이다. 흑인 성모의 주변을 말린 코끼리 똥과 성기 사진으로 장식한 오필리의 작품 ‘성모 마리아’가 1999년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 전시되자 가톨릭 신자인 루돌프 줄리아니 당시 시장이 발끈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줄리아니를 비난하고 나서고, 미술관이 소송을 제기한 끝에 ‘코끼리 똥 그림’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임근혜, 『창조의 제국:영국 현대 미술의 센세이션』)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리고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거대한 코끼리 똥이 나타났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전문가 이제석씨가 제작한 대형 걸개 그림이다. 코끼리 똥을 빗자루로 치우려고 하는 참새의 모습과 ‘작은 나라들이 치우기에는 역부족이다. 큰 나라들이 나서야 한다’는 문구를 담았다.

강대국들은 코끼리처럼 닥치는 대로 연료를 먹어 치우고 엄청난 배설물을 뿜어내고 있다. 이 ‘코끼리 똥’도 친환경 종이나 연료, 약재로 탈바꿈시킬 순 없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총회 기조연설에서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를 내년 상반기에 한국에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참새의 마법 빗자루가 나올 것인가.

구희령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