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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휴전선이 있었네] 7. 댐에 평화를 담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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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철원평야와 평강고원이 맞닿아 있는 이곳은 6.25 당시 가장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 그래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지역이다.

'육탄 3용사' 로 유명한 백마고지나 중공군이 위훈(偉勳)으로 기록하고 있는 상감령(上甘嶺)도 모두 중부전선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의 비무장지대(DMZ)는 겉으론 평온하지만 속으로는 늘 긴장이 가득찬 곳이다.

그저 한적한 듯 보이는 수풀 속에서도 언어.피부.조상이 같은 젊은 병사들이 서로 적의(敵意)를 번득이며 매복과 수색활동을 반복하고 있다.

세계적인 평화운동가 조디 윌리엄스가 가장 강력히 폐기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곳 DMZ에 널려 있는 대인(對人)지뢰다.

또 이곳은 남북 쌍방간 화력배치 밀도가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지역이다.

그렇다. 내 눈에 비친 DMZ는 평온으로 위장한 적대(敵對)와 분열의 난기류가 흐르는 곳이었다.

내 앞에 펼쳐진 DMZ는 반세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어 왔지만 지금 내가 보고 느끼는 DMZ는 과거와는 달랐다.

휴전협상이 시작된 1951년 여름부터 휴전일인 53년 7월 27일까지 DMZ는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격전지였다.

그후 냉전시대에는 동서 대립의 상징이었으며 적개심에 가득찬 남과 북 사이의 완충벨트이기도 했다.

그러나 탈냉전과 남북화해의 움직임이 꿈틀대는 지금, 그것은 한반도 평화의 결정적 장애물이 되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정전(停戰)체제' 라는 제도에 묶여 있는 것이다.

휴전선을 따라 설치돼 있는 초소에서는 건강하고 씩씩하며 애국심에 충만한 장병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해발 6백여m의 계웅산OP와 1천m가 넘는 대성산OP에서 만난 장병과 지휘관들…. 나는 병사들의 다져진 어깨를 어루만지며 그들이 지키고 있는 조국을 생각해 보았다.

전운이 가시지 않은 이 휴전선 밖에서는 이미 냉전해체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치고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이 자리에 서있어야 하는 이유를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해답은 곧 '조국에 대한 자부심' 이다. 장병들에게 적에 대한 적개심을 더욱 고취하는 것보다 '조국이 내가 목숨을 걸고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 임을 확신시켜 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

정치지도자나 시민사회는 장병들이 이런 조국을 가슴깊이 느낄 수 있도록, 정의가 승리하고 민주와 번영이 넘쳐나는 공동체 건설에 힘쓰는 것이 의무이리라.

판문점에서 한국어로 된 브리핑 차트를 봤더니 거기에는 아직도 북한을 '북괴' 로 적어놓고 있었다.

브리핑을 맡은 한국군 병사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북한' 과 '북괴' 를 혼용하고 있다" 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이 우리를 '괴뢰' 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이다.

분단 사상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마당에 '북괴' 니 '남조선괴뢰' 니 하는, 적개심으로 가득찬 험악한 용어부터 없애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답사 사흘째 되던 날 올라간 1천m가 넘는 대성산OP는 안개와 바람이 변화무쌍했다.

산 정상에서 답사단 일행은 뜻밖의 반가움에 젖었다. 브리핑 장소에는 고은.유홍준.공지영.필자 등 네 사람의 최근 저서가 나란히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우리를 성심껏 환영하는 관할 연대장의 배려가 고마웠다.

그러나 이 분단현장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병사들에게 내 책( '새로 쓴 현대 북한의 이해' )이 정훈용으로 활용된다고 생각하니 마냥 뿌듯해만 할 수 없는 책무가 어깨를 눌렀다.

이곳 장병들의 충천한 사기와 활달함은 우리 일행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이곳을 관할하고 있는 승리부대 연대장 김영섭 대령은 함께 간 강요배 화백의 말처럼 어느 모로 보나 '호연지기(浩然之氣)' , 바로 그것이었다.

강원도 화천에 있는 평화의 댐(높이 1백21m)은 가뭄 때문인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댐은 1987년부터 모두 6백52억원의 국민성금을 모아 88년에 완공됐다.

당시 정부는 북한이 2백억t의 금강산 댐을 방류하면 서울 63빌딩의 절반 정도까지 물에 잠기게 된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면서 온 국민을 반공.반북 캠페인으로 몰아갔다. 그런 배후에는 정권의 위기를 반공이라는 명분으로 돌파하려는 부도덕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평화의 댐 안보관에서 근무하는 안내원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 10명중 8명은 당시 정부를 비난하고 그중 일부는 격분한 나머지 화분을 집어 던지곤 한다" 고 전했다.

이곳에서 발행되고 있는 안내 팸플릿에는 평화의 댐을 아직도 '안보 관광지' 로 소개하고 있다.

안보를 우롱한 이 구조물이 안보현장으로 통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준공 후 단 한번도 제 구실을 못해 본 대항(對抗)댐으로서의 평화의 댐. 비록 잘못된 가설과 역사 위에 세워진 구조물이지만 이제라도 그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안보 현장도, 안보 관광이어서도 안된다. 우리의 건강한 안보 의식을 해친 반(反)안보의 교훈적 구조물임을 보여주고 역대 정권이 북한과의 대결을 국내 정치에 어떻게 악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산 교육장이 돼야 한다.

또 분단으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를 따져보고 반성하는 장소가 돼야 한다.

답사를 마치면서 '분단선' 으로만 인식했던 휴전선에 평화의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휴전선은 이제 더이상 적대와 대결의 분리점이 아니라 남과 북에 평화를 이어주는 연결점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작게는 휴전선 양측에 설치돼 있는 선전용 초대형 간판과 확성기를 철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끊어진 경의선(京義線).경원선(京元線) 위로 상생(相生)의 물자를 실은 기차가 남북을 달릴 때 우리는 비로소 전쟁의 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의 시대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1958년 경기도 남양주 출생

▶성균관대(政博)

▶저서 : '분단시대의 통일학' '조선노동당 연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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