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유도요노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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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사실상 당선이 확정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운데)가 부인 크리스티아니(왼쪽)와 러닝메이트 주스프 칼라(오른쪽)가 지켜보는 가운데 20일 자카르타 교외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카르타 AP=연합]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혼란과 좌절을 겪어 왔던 인도네시아에서 '유도요노 시대'가 활짝 열렸다.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55)후보는 지난 20일 대통령선거 결선 투표에서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57.민주투쟁당)대통령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눌러 사실상 당선이 확정됐다. 투표함(유권자 1억5300만명)의 3분의 2를 개표한 결과 61%를 얻었다. 메가와티의 39%에 비해 20%포인트 이상 높다.

당선이 확정되면 10월 20일 5년 임기의 첫 직선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국내외에서 유도요노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그의 과제는 먼저 정치.사회적인 혼란으로 수렁에 빠진 경제를 살리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선 외국인과 다국적 기업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최근 노조 결성이 활발해져 임금이 오르고 이슬람 급진 세력의 폭탄 테러가 빈발하기 때문이다. 인구.자원대국이라는 잠재력을 살리지 못해 경제성장률은 4% 안팎에 그치고 있다. 실업자는 인구 2억2000만명 중 4000만명에 이른다. 부패가 만연해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어려운 실정이다.

유도요노는 "부패를 쓸어내고 사법 제도를 바로잡을 과감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내외 기업의 투자를 늘릴 세제 개혁과 노동 관계법의 개정도 약속했다. 돈과 연줄, 권력에 휘둘렸던 의문투성이의 법원 판결도 다시 조사한다.

그의 참모인 소피안 와란디 인도네시아 고용주협회(IEA)회장은 "각계각층과 미 상공회의소 등의 도움을 받아 고도성장을 위한'로드 맵'(일정표)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새 정권이 들어선 뒤 이슬람 과격 세력의 테러 활동을 억누를 조치를 기대한다. 메가와티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난하면서 반테러 전쟁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군인 집안 출신의 유도요노는 군 장성으로 예편해 메가와티 대통령 밑에서 안보담당 국무장관을 지냈다. 군사학교를 수석 졸업한 데다 미국에서 행정학 석사를 따 영어가 유창하다.

그의 발목을 잡을 변수도 적지 않다. 먼저 의회(전체 550석)에서 '야대여소'의 구도를 뛰어넘어야 한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측근 세력이 만든 골카르당(128석)과 메가와티의 민주투쟁당(109석) 등 3대 야당이 60%의 의석을 갖고 있다. 유도요노가 이끄는 민주당은 지난 4월 총선에서 55석밖에 얻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유도요노가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한 만큼 정계 개편, 정당 연합을 통해 안정 의석을 확보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일각에선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부 언론은 "군에 있을 때 실전에 나서기보다 회의를 많이 해 '에어컨 방(房)의 장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소개했다. 사교에는 능하지만 작전엔 약한 장군이었다는 얘기다. 유도요노가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 인도네시아 경제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지 기대된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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