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DJP+4의 무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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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 김대중(金大中)총재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의 이른바 'DJP공조' 에 군소정당.무소속 의석 네 개를 합친 'DJP+4인 연합' 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정가에선 두 金씨의 '재회' 를 시간문제로 여기는 분위기다. 군소정당.무소속 의원 4명에게는 여권이 장관직이나 국회 상임위원장.고위 당직을 제의 중이라는 말도 벌써부터 들린다.

여권의 의중은 말할 것도 없이 민주당.자민련 의석에 4석을 보태면 원내 과반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제 국회의장 경선에서 단맛을 톡톡히 실감한 여권은 이같은 공조 방식을 '원내 연대' 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산적한 국정현안을 원만히 처리하려면 어쩔 수 없다' 는 논리부터 총선이 끝나면 정파별로 이합집산이 흔한 일본의 예를 변명삼기도 한다.

그러나 무슨 말로 포장하더라도 여권의 이런 주장은 역대 국회에서 많이 보아 온 힘의 논리, 수(數)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제1 야당에서 직접 의원을 빼가지만 않을 뿐이지 15대 국회 초반이나 그후 정권이 바뀐 뒤 행해졌던 여당 의석 부풀리기와 다를 것이 무언가.

지난 총선에서 표출된 여소야대의 민의와도 한참 동떨어진 행태로 볼 수밖에 없다. '일본식 연정' 을 참고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우리는 지지도가 폭락하면 언제든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국민 의사를 묻는 내각제 국가가 아니다.

대통령은 물론 국회의원도 한번 당선되면 임기가 끝나기 전에는 민의에 어긋나는 일을 해도 사실상 바로잡을 방법이 없다.

설혹 유권자 의사에 다소 반(反)한다 하더라도, 'DJP+4' 란 것이 이념이나 정책상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새로운 정치실험으로 봐줄 수 있다.

그러나 기껏해야 입각이나 당직.국회직 같은 '당근' 을 접착제로 삼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처럼 원론적으로는 분명히 일리 있는 아이디어도 공조를 위한 정략에 동원되니까 야당이 반발하고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

총선 후 야당과 제대로 대화도 해보기 전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니 金대통령이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존중' '총선 민의 수용' 을 아무리 다짐해도 신용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총선 후 협량(狹量)하게 정국 현안에 대처한 한나라당의 실책도 가세했을 것이다. 어쨌든 대화.상생하겠다는 여야 영수회담 발표문이나 인위적 정계개편이 없다는 약속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군비확장' 을 서두르는 격인 지금 상태로는 강경대치 정국이 너무 뻔히 내다보인다.

여당은 과반수 의석에 무리하게 집착하지 말고 여야 협력 시스템부터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국회 파행은 15대 때 실컷 구경한 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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