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카자흐 대통령 방한 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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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훈 정치부 기자

노무현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방문 숙소인 인터컨티넨털 호텔 로비에서 우리 대기업의 현지 지사장이 이런 얘기를 했다.

"지난해 11월 12일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한국에 갔을 때다. 이곳에서 인터넷을 뒤지고 서울 본사에 전화해 신문을 찾아봐달라고 했다. 그런데 관련 기사를 찾기 어려웠다. 잘해야 단신 기사였다. 여간 아쉽지 않았다. 내가 머쓱하더라. 이곳에서 7년을 보내고 있지만 개척자인 우리 입장에선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몇억달러가 왔다 갔다 한다."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당시 단신으로 보도를 했던 데다 카자흐스탄이 세계 7위의 석유 대국, 세계 1위의 우라늄 보유국이란 것도 이번 회담을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된 터였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맞는 카자흐스탄은 적잖은 신경을 썼다. 지난 19일 공항에서 수도인 아스타나로 들어가는 40분 거리의 도로변에는 300~400m 간격으로 기마경찰이 도열해 부동 자세로 예를 표하고 있었다. 카자흐의 최대 일간지인 카자흐스탄스카야 프라우다는 1면과 8면에 걸쳐 노 대통령 회견과 방문.프로필 기사를 비중있게 다뤘다. 우리 기준으론 '옛날식'이랄 수 있지만 먼 길을 날아온 손님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현 정부 들어 파키스탄.알제리 대통령 등 알게 모르게 많은 외국 원수들이 한국을 다녀가고 있다. 이들과의 정상회담 기사를 다뤘던 기자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국빈이 많다. 멀리서 찾아온 손님인 만큼 적은 비용과 정성으로도 '효과'를 낼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대통령의 외교보좌관 시절 "한국을 찾는 외국 원수 보도에 조금만 신경써달라" "애국심에 호소한다"며 기자들에게 읍소하기도 했다. 우리의 내부 지향적 사고가 장기적인 국익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세계화추진위원장을 지냈던 이홍구 전 총리는 일전에 이런 얘기를 했다. "외국인이 자기 나라에 나타나면 '이거 뭔가 좋은 일이 생기겠구나'하고 표정이 환해지며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이 선진국의 한 척도다."

최훈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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