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선민의와 거꾸로 간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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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일 개원한 16대 국회는 첫 의장 선거에서 총선 민의를 거꾸로 나타내는 결과를 빚었다.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의장 선거에서 패배하고 부의장 1석을 얻는 데 그쳤으며 원내 2당인 민주당과 교섭단체 구성에도 실패한 자민련은 연합전선을 구축해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얻어내는 승리를 거뒀다.

한나라당은 이를 두고 총선 민의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원내 다수당이면서도 다수 의석의 위상을 활용하지 못하고 여당 내 386세력의 이반(離反)이나 기대하는 전략적 미숙과 편협성 때문에 자초한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민주당+자민련이 사실상 공조 상태로 들어가고 한나라당이 소수당 신세로 밀리면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의 임명 동의를 둘러싼 인사청문회와 표결, 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국회법 개정 등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예상된다.

이런 구도로 가면 15대 국회와 같이 여야의 극한적인 대결이 벌어지고 이로 인한 국회의 파행과 국정 심의의 지체를 우려하는 시각이 없지 않다.

16대 국회는 몇가지 점에서 정치 개혁의 중요한 입법을 해야 한다. 부패방지법과 인권법이 그렇고 앞으로 남북교류 확대와 더불어 국가보안법 등 중요 법안의 개폐를 다뤄야 한다.

또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지원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장기적으로 담보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의 지원과 입법이 필수적이다. 전략적 차원이 아닌 국익적 관점에서 다룰 사안들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의 심의와 입법화 과정에 국회가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과거와 같은 '절차 투쟁' 은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과거 야당이 소수당 시절에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안건을 상정하지 못하게 하거나 토론을 봉쇄.지연시키고, 단상을 점거하는 절차적인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수당이 된 야당이 똑같은 전술로 나온다면 이는 다수의 힘으로 횡포를 부리는 데 불과한 것으로 비칠 것이다.

때문에 다수 야당은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고 소수 야당들과 제휴하고 지지를 얻음으로써 그들의 의사를 입법화하거나 제도화하는 전술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교섭단체 구성 문제도 소수당이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한다는 원칙에서 전략적으로 크게 생각하는 발상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국회가 과거와 다른 모습을 가지기 위해서는 '상생(相生)정치' 니 '국정 파트너' 니 하는 수사(修辭)보다 독자적인 입법 능력과 국정심의 능력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여당도 국회를 국정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부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가져야 하며 야당도 그들의 수권 능력을 절차적 투쟁이 아니라 입법과 국정심의 과정에서 입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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