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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휴대폰 좀 꺼주세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일 오후 16대 총선 봉화-울진 선거구 재검표가 실시된 대구지법 안동지원 1호법정.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첫 재검표여서 많은 인파가 몰렸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중권(金重權)후보가 19표 차이를 뒤집고 '영.호남화합 전진기지' 확보의 꿈을 살려낼 수 있을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열기가 높았다.

취재진을 비롯, 방청석에 자리한 한나라.민주당 의원 7~8명의 모습에서 두 당의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방법원에서 보기 드물게 대법관 4명으로 재판부가 구성됐고 그만큼 엄숙한 자리였다.

재검표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6대의 검표기가 투표용지를 쉴새없이 내뱉고 검표원들의 손놀림이 분주한 가운데 긴장된 법정 분위기를 깨는 날카로운 휴대폰 소리가 들렸다.

방청객이 입장할 때 법원 직원이 휴대폰을 끄라고 고지했고 출입문에 휴대폰.호출기의 전원을 끄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이날 오후 1시부터 10시간 넘게 검표가 이어지는 동안 방청석 여기저기서 휴대폰이 울렸다.

법원 직원들은 계속 휴대폰을 꺼달라고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대부분 벨 소리가 울리지 않는 진동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국회의원.공무원도 개의치 않고 휴대폰 통화를 거듭했다.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한 야당 국회의원은 두세차례 울리는 휴대폰의 폴더를 열어 통화를 하다 법원 직원의 제지를 받는 무안을 당했다.

한 선관위 공무원은 진동으로 바꿔놓았다가 전화를 받으며 법정밖으로 나갔다. 취재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법원 직원이 "휴대폰이 울리면 퇴장시키겠다" 고 엄포까지 놓았지만 쇠귀에 경읽기였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법정에서마저 울리는 신호음은 법관들의 적지 않은 골칫거리다.

대구지법 한 판사는 "경고를 했는데도 울려 퇴장시킨 적이 있다" 며 "내부적으로 휴대폰 소음에 대해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고 말했다.

지난해엔 방청객이 휴대폰 소음을 내 감치.과태료 결정을 받기도 했다.

재검표 법정에서 울린 휴대폰 신호음은 우리 사회에 질서의식과 예의가 얼마나 실종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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