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북한…지금 변화중] 18·끝. 활발한 4강 외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이 전방위(全方位)외교에 나선 가운데 체제 보위.실리 양 측면에서 가장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한반도 주변 4강(强)외교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부터 중국.러시아와 1990년대 이전 수준의 밀착관계를 복원하고 미국.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4강 동시 다발 외교는 이전에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김정일'(金正日)' 총비서가 추진하는 정책 변화 가운데 가장 눈에 띈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 및 김정일-장쩌민(江澤民) 회담은 金총비서가 '은둔외교' 에서 벗어나 일선에 적극 나선다는 의미를 갖는다.

북한 외교의 변화는 지난해 6월 김영남(金永南)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중(訪中) 때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金위원장의 방중은 92년 8월 한.중 수교와 김일성(金日成) 주석 사망 이후 느슨해진 '혈맹관계' 를 예전 수준으로 복귀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기관지 노동신문의 사설(6월 20일자)은 "중국은 특색을 가진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서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고 있다" 며 중국의 개방정책을 높이 평가하고 "조.중 두 당과 두 나라, 두 인민들 사이의 전통적인 친선협조관계를 가일층 강화.발전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고 전했다.

중국도 지난해 10월 5일 탕자쉬안(唐家璇)외교부장을 평양에 보내 고위급 인사의 교환 방문을 복원했다. 올들어선 金총비서의 생일인 2월 16일 북한이 홍콩에 총영사관을 개설해 달라진 양국관계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지난 3월 5일에는 金총비서가 전격적으로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완융상(萬永祥)평양 주재 중국대사를 비롯, 대사관 직원과 만찬을 함으로써 이목을 모았다.

북.러 관계도 지난해 '조-러 친선.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 에 합의하면서 우호관계를 복원하기 시작됐다. 지난 2월 10년 만에 러시아 외무장관 이바노프가 평양을 방문, '조.러 신조약' 에 공식 서명했다.

양국은 백남순(白南淳)외상의 올 하반기 모스크바 방문 등 고위급 인사교류를 비롯한 관계 회복에 합의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이바노프 장관의 방북에 대해 데니소프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는 합의사항 이행을 위한 양국간 공동 실무작업이 활발히 진행될 것이라면서 "경제를 비롯한 모든 러.북 관계가 활성화하기를 기대한다" 고 말했다.

북.미 관계도 최근 급류를 타고 있다. 올들어 북한과 미국은 지난 1월 말 베를린회담에서 양국 고위급 회담 개최에 합의하고 3월 초 뉴욕에서 김계관(金桂寬)외무성 부상과 찰스 카트먼 미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간의 고위급 회담 예비회담을 가졌다.

양측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핵심 사항인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문제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의 항구적 중지 등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회담에서 상호간 입장 차이가 좁혀지진 않았지만 일단 대화의 물꼬는 텄다.

양국은 지난달 24~3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재개된 회담에서 상호 현안에 대해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이 끝난 뒤인 30일 미 국무부는 회담이 '진지하고 건설적인 방식' 으로 진행돼 진전을 이룩했다고 평가했다.

북측이 요구해온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 손실 보상을 미국이 검토하고,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 미사일 개발 문제 협의를 위한 별도회담을 북측이 받아들인 것으로 관측된다.

올 하반기로 예상되는 白외상의 워싱턴 방문이 향후 북.미 관계의 진전속도를 가늠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민간인 납치 문제 및 다단계 미사일 시험발사로 냉각된 북.일 관계도 지난해 9월 북.미간 베를린회담에서 북한 미사일 문제가 타협국면을 맞으면서 청신호가 켜졌다.

북.일 관계는 99년 12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전 총리를 대표로 한 초당파 의원단의 평양 방문과 그 뒤 적십자회담 및 수교협상 예비회담 개최 합의에 이르면서 전기를 마련했다.

일본은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북한에 쌀 10만t을 지원하고 4월 말 평양에서 9차 북.일 수교 협상을 재개했다.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만난 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 총리는 "일본은 북.일 수교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金대통령이 김정일 총비서에게 이같은 뜻을 전달해 주길 희망한다" 고 밝혀 북.일 수교 협상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북한의 4강 외교 강화는 일시적인 방침이라기보다 경제 재건 및 정권 안보 차원에서의 전략적 방향 전환으로 보인다. 이 전환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의해 힘을 받고 있는 만큼 북.미, 북.일 수교라는 '교차승인' 국면으로 진전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미사일 등 대량 살상무기를 둘러싼 4강의 심각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핵.미사일 개발에 계속 집착을 보일 경우에는 상황이 반전될 수도 있다.

특별취재반〓유영구.최원기.정창현.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