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코드'를 알면 부자가 되려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서울여대 경영학과 한동철 교수

상큼하고 발랄한 여대생들이 떼지어 몰려 들기 시작했다. 10분도 안돼 넓은 대형 강의실이 꽉 들어찼다.

이달 중순 서울여대의 인문사회관 1층 대강의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부자학 개론' 수업이 시작됐다. 갖가지 재미난 사례를 달변으로 엮어내는 경영학과 한동철 교수의 유머러스한 강의에 '까르르' 웃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강의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부자에 대한 '코드'를 설명하고 읽어내려는 교수와 학생들의 눈빛은 여느 강의못지 않게 진지했다.

이날 강의의 주제는 '부자의 개성'. 한교수가 칠판에 'AR'과 'CR'이라고 쓰더니 차이를 설명한다. 굳이 우리말로 풀자면 AR은 '절대부자(Absolute Rich)'이고, CR은 '완전 부자(Complete Rich)'쯤 된다. "AR은 지금 쓰는 지출 수준을 유지하면서 아무 일도 안하고 10년 동안 살 수 있는 부자라고 보면 됩니다." 한교수의 설명이 이어진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심지어 재벌들도 이에는 못 미친다고 한다. CR은 AR보다는 못하지만 어쨌든 부자들로서 한국에서는 10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재산세를 200만원 정도 내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지요." "이들 중 상당수는 근면하게 일해서 돈을 모으고, 안 써서 부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위아래 옷이 한벌 밖에 없다는 할머니 부자의 얘기 등이 사례로 등장했다.

학생들이 부자학 강의에 몰려드는 이유는 뭘까.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라고 한다. 2학기 수강신청을 할 때는 2분만에 350명의 정원이 다 찼다. 이런 열기는 지난해부터 사회에서 '10억 만들기' 열풍으로 상징되는 재테크 열풍이 불었던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서울여대 한교수의 강의는 올 1학기부터 시작됐다. 그렇다고 이 강의에서 어떻게 돈을 버는지 재테크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신성한 강단에서 천박하게 무슨 부자론이냐고 폄하할 이들도 있겠다. 그러나 한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부자들을 이해하고 이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지를 배워보자는 취지입니다." 부자에 대한 근거없는 환상이나 무분별한 추종.배격에서 벗어나고 부(富)에 대한 성찰과 동시에 부자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건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강의에선 머릿속으로 그리는 부자보다 직간접적으로 느껴본 부자를 중요하게 여긴다. "리포트를 내도록 하는데 부자들을 직접 인터뷰 하도록 합니다.""실제 부자들을 만나서 그들이 어떻게 돈을 모으고, 어떻게 쓰고, 그들의 철학과 생활신조는 무엇인지 체험해보는 것이죠."

예컨대 '부자는 짠돌이'라는 가설을 세워 놓고, 직접 부자들을 만나 실제로 그렇게 사는지 검증해 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가설로 리포트를 작성해 발표한 학생들이 있는데 그 사례가 재미있다. 어떤 학생이 한 부자집에 과외교습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는데 복도에 불이 다 꺼져 있어서 불을 켜 놓았더니 그 집 할머니가 노발대발하면서 도로 불을 다 꺼 놓아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물론 이런 체험과는 반대로 "내가 만난 부자들은 그렇지 않더라"며 반대 사례를 제시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한교수는 최대한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강의 중에 외부 전문가들의 특강 자리를 많이 마련한다. 2학기에는 '한국의 부자들'이라는 책을 쓴 기자, 강남 도곡동에서 부자들을 상대하는 은행원, 재벌 회장 등에게 강의를 맡기려고 생각 중이다.

그가 이같은 강의를 교단에 들고 나온 것은 그의 전공이 '부자학'인 것과도 무관치 않다. 그는 국내에 첨단 'VIP 마케팅'개념을 도입, 발전시켜 온 전문가다. 한교수는 "부자학 강의에서 학생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건전한 사회 상식을 갖고 있느냐, 논리적으로 포인트가 잘 들어 맞느냐 등이다"며 "학생들이 부자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부자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된다면 그게 소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교수는 "학생들이 부자에 대해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서서히, 땀 흘리고 고생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부자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김준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