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방에선]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보존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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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남 담양을 자동차로 여행해본 사람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가로수 길을 기억할 것이다.

담양읍에서 전북 순창으로 넘어가는 국도 양쪽에 높이 30m 가량 곧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들. 2㎞ 남짓 이어지는 가로수 터널 사이로 난 길을 달리다보면 탄성이 절로 나오면서 온갖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전국 최고의 가로수 길이라고 꼽는 사람도 많고, 대나무 숲과 함께 담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명물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익산 지방국토관리청이 국도의 선형을 직선화하고 이 도로를 왕복 4차로로 넓히면서 7백50m 구간의 메타세쿼이아를 베어내기로 한 것이다.

익산 지방국토관리청과 담양군은 원래 모든 구간의 나무를 잘라내야 하나 도로 선형을 바꿔 그 수를 최소화했다고 설명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30여년에 걸쳐 가꾼 풍경을 하루 아침에 날려버리기 전에 충분한 노력과 심사숙고했는지 묻고 싶다. 메타세쿼이아를 그냥 두고 도로를 확장하는 방법은 과연 없었는가. 예산이 부족해 외면한 것은 아닌가. 도로의 교통 기능과 안전성에만 치중한 것은 아닌가.

가로수를 보존하겠다고 마음먹고 접근한다면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도로 시공이 까다로워지고 사업비를 추가로 투입해야 할지라도 감수하는 것은 어떨까. 미국에선 아스팔트를 뚫고 자라난 쇠뜨기 한 그루를 살리기 위해 우회도로를 내기도 했다. 그 후 그 쇠뜨기를 구경하러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을까. 메타세쿼이아가 없어진다는 소식에 대구의 친구를 불러 함께 구경했다는 한 회사원의 이야기를 사치로만 여길 것인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 앞 세대가 물려준 유산이고, 우리에겐 잘 가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 가꾸기보다 있는 것을 잘 지키면서 가꾸는 게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훨씬 효율적이다.

미래를 내다보지 않은 채 전기 톱을 들이댔다 훗날 후회하고 후손들에게 지탄받지 않도록 하자. 환상적인 메타세쿼이아 길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다시 찾아보자.

이해석 <호남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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