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캐릭터] '남자 이야기' 매봉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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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죽어서 돌아올 지도 모르는 길이다. 노호산 계곡에는 불패의 적장 하향월이 기다리고 있다. 기습을 노리며 숨 죽인 채 밤길을 걷는다.

문득 발 밑에 밟혀 꺾이는 들국화. "섬세한 영혼을 가진 이라도 만났더라면 슬픈 노래로 다시 태어났을 들국화. " 기습을 앞둔 전장에서 매봉옥은 이렇게 되뇌인다.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전사들, 끊이지 않는 칼 싸움 소리, 강인함만이 절대적인 가치로 올라서는 전장,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존재론적 의문들. 이 모든 남성적 이미지의 틈새에서 남자임에도 여성적 감수성으로 피어나는 인물이 바로 매봉옥이다.

"허허…, 사는 거…. 그건 살다보면 살아지는 거란다" 라고 했던 할아버지의 말을 반복하며 처절한 싸움터에서 눈물을 흘리는 캐릭터가 바로 그다.

매봉옥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쟁이란 전체적 무게와 맞먹는다.

전투의 참상보다 생존의 과제 앞에서 무기력하게 떨어져 나가는 아름다움이나 품위, 사랑이란 가치들을 바라보며 비로소 처절함을 느끼는 까닭이다.

'남자 이야기' (권가야 작.서울문화사)는 스토리가 빈약한 국내 만화계에서 확연히 눈에 띄는 작품이다.

출판사 관계자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지 '씬 레드라인' 이 아니다" 라며 은근슬쩍 불만을 토로할만큼 주제 의식이 강한 작품이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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