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3000억 들인 쇼핑몰 입점률 12% ‘빈 집 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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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공사가 청계천 상인들의 이주를 위해 지은 가든 파이브 입점률이 12%에 머물고 있다. 라이프단지 리빙관 6층에 한 점포만 입점해 있다. [김도훈 인턴기자]

10일 오후 3시 서울시 문정동에 있는 ‘가든 파이브’의 라이프 단지 리빙관 6층. 피혁전문점들이 들어설 이곳은 높은 천장에 대리석으로 바닥을 치장해 여느 백화점 못지않게 화려하다. 통유리창 밖으로는 76m 높이의 대형 파라솔이 펼쳐져 있다. 매장 한가운데 부스도 간판도 없이 철제 선반과 ‘○○피혁’이라는 작은 아크릴판만 세워놓고 영업 중인 점포가 있다. 이 점포 주인 이은용(55)씨는 “아무도 입점하지 않아 6개월째 혼자 장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계천에서 이주해 온 이씨는 “사기업이 지었으면 부도가 나도 한참 전에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툴관 2층 공구·산업용재 쇼핑몰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D구역의 50곳이 넘는 점포 중 불이 켜져 있는 곳은 5곳뿐이다. 공업용 스프레이를 파는 김승종(35)씨는 “공구상가는 1, 2층을 선호하는데 고층으로 짓다 보니 실평수는 작으면서 분양가는 높다”고 설명했다.

가든 파이브가 상인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고전하고 있다. 현재 점포 계약률은 51%, 입점률은 12%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8360개의 점포 중 분양 대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청계천 상인들이 입점을 꺼리기 때문이다. 분양 대상 6097명 중 상가 분양 계약을 한 청계천 상인은 2376명, 입점한 사람은 296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6월부터 입점해 부분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SH공사는 청계천 상인들을 유치하기 위해 네 차례에 걸쳐 분양 조건을 완화했다. 전매제한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고, 대출이자를 연 5%에서 4%로 내렸다. 다점포 소유도 허용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청계천 상인들이 입점을 꺼리는 이유는 뭘까. 청계 3가에서 공구 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김기찬(52)씨는 “분양가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높아 계약을 포기했다”며 “5~10년 동안 활성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까지 비싼 이자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분양을 맡은 SH공사 측에 따르면 점포의 층별 평균 분양가는 라이프 단지의 경우 8967만원(9층)~4억683만원(1층), 툴 단지의 경우 1억1616만원(5층)~3억5773만원(1층)이다. 상권이 활성화가 안 돼 위험부담이 높다는 것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강성일 라이프단지 상인회장은 “관리비를 2년 동안 보전해 주고, 이자 보전 기간을 5년으로 늘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청계천에 남은 공구 상인들은 경기도 하남시로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분양가가 낮으면서 공구 상가에 적합한 ‘맞춤형 단지’를 짓겠다는 것이다. 청계천산업용재상가 이주대책위원회는 지난달 하남시와 공작기계와 공구를 취급하는 물류센터를 건립하기로 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SH공사 측은 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희수 사업2본부장은 “청계천 상인들의 입점을 포기하고 일반 분양을 별도로 공급할 것”이라며 “이미 들어와 있는 상인들을 위해서라도 아웃렛이나 대형 마트 등을 입점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가든 파이브=서울시 산하 SH공사가 청계천 복원에 따른 주변 상인들의 이주를 위해 1조3000억원을 들여 2008년 건설했다. 비닐하우스 단지가 있던 송파구 장지동(현 문정동) 일대 12만1213㎡ 부지에 연면적 82만㎡, 8360개의 점포가 들어설 수 있는 툴(Tool)·웍스(Works)·라이프(Life)의 3개 단지가 들어섰다. 여기에 3년 내 물류단지, 활성화단지가 들어서면 가든 파이브의 5단지가 최종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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