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총리감’ 호주 첫 중국계 연방 하원의원 마이클 존슨 자유당 원내총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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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피가 섞인 호주 최초의 연방 하원의원인 마이클 존슨 하원 원내총무(자유당)는 “지금까지 내가 이룬 성공의 열쇠는 어머니의 희생이었다”며 자녀 교육을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어머니에게 공을 돌렸다. [시드니=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마이클 존슨(39). 그의 몸에는 동서양의 피가 반반씩 섞여 있다. 어머니는 중국인. 아버지는 영국인이다. 2001년 총선 퀸즐랜드주(州) 라이언 선거구에서 당선되면서 호주 최초의 중국계 연방 하원의원이 됐다. 내리 3선을 기록하면서 야당인 자유당의 하원 원내총무가 됐다. 호주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정치인 중 한 명인 그를 지지자들은 ‘호주의 오바마’라고 부른다. 머지않은 장래에 호주의 최고 국가지도자가 될 만한 자질을 갖춘 ‘하이브리드(혼혈)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당 대표 교체의 여파로 정신없이 바쁜 그를 최근 시드니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만난 사람=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그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허겁지겁 호텔 로비로 뛰어 들어왔다. 한 손엔 두툼한 서류가방과 쇼핑백, 다른 한 손에는 블랙베리(스마트폰)가 들려 있었다. 그가 ‘필수무기’라고 표현한 블랙베리는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 동안에도 수시로 몸을 떨었다. “신임 당수인 토니 애벗과 티베트 망명정부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회동 때문에 늦었다”며 “혹시 애벗을 인터뷰할 생각이 있으면 주선해 주겠다”는 말로 지각 도착에 대한 미안함을 표시했다.

-‘호주의 오바마’란 별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게 부르는 지지자들이 있는데, 솔직히 부담스럽다. 계속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당신이 지금까지 써온 ‘성공 스토리’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정치인에게 여정(旅程)은 있어도 목적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왕이다. 정치인은 국민이 잘 되고, 국가가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정치인의 여정이 어디서 끝날지가 결정된다. 개인적으로 외교와 국제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외교장관으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는 한반도의 지정학에 특히 관심이 많다. 올 4월 북한에도 다녀왔다.

- 그다음은?

“그것은 당과 내 동료들, 그리고 유권자들이 결정할 문제다.”

-당신을 보면 미국에 ‘아메리칸 드림’이 있듯 호주엔 ‘오스트랄리안 드림’이 있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라면 당신의 성공 스토리가 가능했겠는가.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유럽계 한국인이 한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호주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호주는 나같은 보잘것없는 배경을 가진 사람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나라다. 나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더구나 이민자 출신이다. 다문화 사회인 호주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나라다. 성공 여부는 개인의 노력과 결단력, 열정에 달려 있다. 한국계 호주인도 총리가 될 수 있다.”

존슨 의원은 중국 광둥성 출신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홍콩에서 태어났다. 파푸아뉴기니(PNG)에 직장을 가진 아버지가 집안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을 거쳐 영국으로 가던 중 ‘소개팅’으로 어머니를 만났다. 부친의 일터가 있는 PNG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뒤 12살 때 부모에 등 떼밀려 호주 브리즈번에 있는 기숙학교로 조기유학을 떠났다. 대학 졸업 후 호주에 정착하면서 식구들도 합류했지만 부친은 지금도 영국 국적을 유지한 채 PNG에서 일하고 있다.

-당신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어머니의 희생이 절대적이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대로 유학을 가고, 동생들이 호주에서 가장 촉망받는 신경외과 의사들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나의 영웅이다. 나 자신의 열정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희생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몇 년 전까지도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했다고 한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은 시드니 어디서도 불황의 그늘을 찾아보기 힘들다. 호주는 경제위기의 터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인가.

“운이 좋은 경우다. 다른 나라들처럼 심하게 위기를 겪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가.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지난 정부(자유당 정부)가 220억 호주달러(약 200억 달러)의 재정흑자를 현 정부(노동당 정부)에 물려줬기 때문에 정부가 심리적 여유를 갖고 대응할 수 있었다. 둘째는 케빈 러드 총리의 경기부양 패키지가 효과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정치적으로는 적(敵)일지라도 상대방이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상대방의 잘못에 대한 비판도 신뢰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것은 양보하되 큰 것을 갖고 싸운다’가 그의 정치 신조다.

-러드 총리의 지지율이 75%를 넘고 있다. 그의 리더십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는 자신과 집권당의 성과를 홍보하는 데 지나칠 정도로 적극적이다.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본능일지 모르지만 일국의 총리가 되면 정당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최근 자유당은 ‘탄소 배출권(EMS)’ 법안을 둘러싸고 내홍을 겪었다. 러드 총리의 EMS 법안에 맬컴 턴불 전 당수가 찬성 입장을 고수하면서 당직자들이 잇따라 사퇴하는 등 심한 갈등을 빚었다. 결국 당수에 대한 불신임안이 가결됨으로써 당수가 교체됐다. 존슨 의원도 당직에서 사퇴했으나 신임 당수가 다시 원내총무직을 맡겼다.

-결국 쿠데타로 당수를 낙마시킨 것 아닌가.

“당론은 당수 개인이 아니라 당 소속 의원들의 총의로 결정되는 것이다. 당수가 보기에 어떤 정책이 아무리 옳더라도 당원들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의견이 다를 경우 당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불신임된 것이다.”

-호주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노령화와 인구 부족이다. 한국· 인도·중국 등 아시아에서 더 많은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 노령화와 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하면서 21세기의 중심인 아시아와 다리를 잇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정치·경제·전략적으로 호주의 안보는 아시아에 달려 있다. 아시아 출신과 혼합된 인구 구성은 호주를 더욱 안전하고 강하게 만들 것이다.”

<시드니에서>

◆마이클 존슨 의원은=1970년 홍콩에서 중국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출생. 호주 브리즈번에 있는 기숙학교를 거쳐 퀸즐랜드 대학에서 법학 전공. 변호사 자격 취득.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석사)과 미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졸업. 31세 되던 2001년 중국계 출신 최초의 연방 하원의원 당선. 2009년 자유당 하원 원내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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