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기업, 한국에서 사업해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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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은행들은 서울 이외의 지역에 대한 자금 지원을 꺼립니다.” (도란캐피털파트너스 피에스트로 A 도란 회장)

“정부기관 공무원들의 (잦은) 인사이동이 장기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맥쿼리 그룹 존 워커 회장)

이 같은 목소리는 KOTRA가 주한 외국기업 임원 15명을 대상으로 ‘경영환경 애로사항’을 듣기 위해 한 인터뷰 자리에서 나왔다.

KOTRA는 외국기업의 투자 확대를 위해 국내 경영환경을 매년 조사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 결과 주한 외국인투자기업 임원들은 대체로 한국 시장이 매력적이지만 인건비가 높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이킨 에어컨디셔닝 코리아 하시모토 다카오 사장은 “한국의 급여 수준이 상대적으로 조금 높다”고 말했다.

또 생활여건은 외국인이 살기에 전반적으로 좋으나 편견이 있다고 밝혔다. 마케팅조사업체인 와이즈앤 웰시 루이 리에스트라 전 사장은 “외국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아직 강하다”며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사소한 일도 외국인에게는 매우 까다롭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를 구입하거나 인터넷에서 영화표를 예매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지만 실질적으로 사회 각 부문에서의 지원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언어 소통이 안 돼 업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고도 했다. 맥쿼리 그룹 존 워커 회장은 “시중의 백화점 직원이나 정부부처 관계자와 원활한 소통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치안 좋지만 노동시장 경직”

노동 시장도 매우 경직돼 있다는 평가다. 월리엄 오벌린 보잉 코리아 사장은 “외국인이 한국 투자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라며 “경직성 개선이 더디다”고 말했다. 인력이 서울에 집중돼 있어 지방에서는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솔라월드 코리아 요르그 와버르 사장)

권위적인 직장 내 문화도 지적했다. “유럽에서는 직함을 떠나 서로를 ‘동료’로 대우하는데 한국에서는 직함이 낮은 직원이 미팅 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밝히지 못한다.”(유압기기 제조업체 사우어 댄포스 다이킨의 요아킴 팔스테트 사장)

이들은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불가피하게 수입해야 하는 설비에 대해선 관세율을 인하하고 배당금에 대한 세금을 낮추는 등의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제기준과 다른 독자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 별도의 추가 비용을 들여야 할 때도 있다고 했다. 소재나 부품은 한국에서 조달하기 어려워 수입하는 업체들이 많은 만큼 정부가 소재산업을 육성해 제조업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환경이 좋다고 말하는 외국인도 많았다. 산업용 가스 공급업체인 린데코리아 브렛 킴버 사장은 “한국은 늦은 밤에도 여성들이 안전하게 돌아다닐 만큼 치안 상황이 좋다”고 말했다. 또 대중교통이 매우 발달돼 요금이 저렴하고 통신시설이 우수하다고 했다. 환경이 위생적이며 의료 서비스의 질도 높다고 했다. 사람들이 친절하며 무슨 일이든 신속히 한다고도 했다. 노동력 수준과 직업의식이 높고, 경제 규모가 크고 소비성향이 강해 구매층이 풍부한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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