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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39주년 특별기획] 기조연설문 요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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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윌리엄 파프 IHT 칼럼니스트

역사 무대 전면에 나설 준비
아시아-유럽 제대로 돼 있나

◆ 세계에서 아시아의 위치=오는 11월의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미국은 아시아와 유럽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멀리하는 쪽으로 정책을 계속 수정해갈 것이다.

지난 10년 미국은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에 의해 지배됐다. 그들은 전 세계가 미국의 통제하에 미국의 가치를 가진 나라들로 가득 차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런 신념은 1920년부터 41년까지 미국을 사로잡은 고립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의 또 다른 표현이다. 다수의 민주당원조차도 이 네오콘의 영향을 받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를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세련되게 하겠다는 정도다. 다수의 유럽 지식인은 케리가 당선되면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9.11테러 이전의 상태로 정상화할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이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미국은 키가 더 크기 때문에 더 멀리 본다"는 말을 했다.

부시 행정부의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한 술 더 떠 "힘의 다각화나 힘의 균형에 의존한 국제질서는 전쟁을 초래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케리의 정강정책도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점은 부시와 다름없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이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이 지역은 장기적으로 불안해질 것이라는 게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생각이다. 미국이 극동에서 철군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은 핵무기를 포함해 중무장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다. 유럽에서도 미군이 철수하면 아시아에서처럼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까. 미국이 아시아와 유럽의 안보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일 뿐이다.

미국은 중동평화나 테러와의 전쟁 같은 비군사적인 문제에 군사적인 해결책을 들이밀고 있다. 동시에 재정적자의 해소를 위해 중국.일본.한국에 기대고 있는 것에서 보듯 미국의 힘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은 이제 역사의 무대 전면에 나서야 한다.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은 이미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정치.경제적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둘이 제대로 준비돼 있는가 하는 점이다.

*** 카비 총키타본 태국 네이션 그룹 부발행인

아시아 공동의 의제 만들기
각국 지도자들 용기 보여야

◆ 새로운 아시아란 무엇인가=아시아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무엇을,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아시아라고 불러야 할지도 막연하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또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등의 위기를 겪으며 아시아 각국들은 뭉쳤다. 서구에 도움을 청하기에 앞서 상부상조해야 한다는 자각이 일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부상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이 일어서고 일본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났으며 인도가 깨어났다. 중국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지난 10년간 교역을 통해 신뢰를 쌓았으며 지금은 가장 튼튼한 정치.외교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최근엔 이런 밀월관계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우려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일본의 경제 회복은 동남아시아 지역에 긍정적인 경제 효과를 주고 있다. 지난 몇십년간 일본이 이 지역에서 공산권 국가와 비공산권 국가들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중국은 자국의 안보 이익 관점에서 행동한다. 중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나라는 먼저 중국이 요구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 국교를 정리해야 한다. 중국과 대만 관계를 중재하려던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역 밖의 문제에 대해 중국은 유엔과 보조를 맞추며 한결 온건한 입장을 취한다. 이게 중국의 최신 국제전략이다.

아세안의 중국 밀착 경향은 일본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인 고려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카드를 흔들지 않으면 일본은 북한 핵 문제에만 골몰한 나머지 주변을 돌아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아세안 우호 및 협력조약'(TAC)에 서명하게 한 것은 이런 전략이 잘 먹혔다는 좋은 본보기다.

아시아의 미래는 중.일의 협력 관계에 달려 있다. 중.일이 터를 닦지 않으면 아시아를 하나의 공동체로 발전시키려는 어떤 시도도 제대로 빛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아세안은 이들 관계가 잘 기능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 중국과 일본이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을 맡아 나가고 인도도 여기에 합류했다.

근대 역사상 아시아 제국들은 공통의 가치 추구를 통해 공동체를 형성하기보다 서로에 상처만 안겨주었다. 유럽이 지난 반세기 5개국에서 25개국의 공동체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아시아는 배워야 한다. 아시아 각국의 지도자들은 타협을 통해 공동의 어젠다를 추출해 내는 용기와 슬기를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조만간 갈등과 분열을 야기할 문제들이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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