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문화대 사회복지학과 41세 ‘주부 학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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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마흔을 훌쩍 넘고도 대학에서 자식과 같은 나이의 친구들과 공부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한씨도 비슷한 경우다. 특이하다면 학회장을 맡고 있다는 점. 학생들 사이에서 한씨는 ‘송은이’ ‘오연수’로 불린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십 년 넘는 나이 차이의 동생들을 이끌고 리더 역할을 하는 개그우먼 송은이나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젊음을 유지 하고 있는 오연수에 견줄 만 해서다.

백석문화대 사회복지학과 학회장인 한윤경(맨 앞)씨가 동갑내기 지도교수인 이화정(가운데 줄 오른쪽 셋째)씨, 동기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내년 2월 졸업 예정인 한씨는 백석대 편입을 계획하고 있다. [백석문화대 제공]

학생들 사이 송은이·오연수로 통해

한씨가 대학 진학을 결심한 건 우연한 기회였다. 아들과 사회복지시설로 봉사활동을 갔다가 그 곳의 아이들을 보고 ‘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히 결정을 했다. 한씨는 “소외된 사람들을 보듬고 싶다”고 했다. 내년 2월 졸업 예정인 그는 백석대로 편입할 예정이다. 공부를 더 해서 청소년 상담사가 될 계획도 세웠다.

보통의 만학도들은 학교생활에 소극적이다. 나이 차 때문에 동기들과 친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씨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깼다. 같이 공부도 하고 놀고, 인생상담도 해준다. 이 때문에 동기들은 한씨에게 ‘우리는 패거리’라고 치켜 세운다. 특히 남학생들의 연애상담은 한씨의 몫이 된 지 오래다. 연인과의 관계가 복잡해질 때마다 한씨에게 조언을 구한다. 정우철(20)씨는 “또래들의 얘기를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고 다른 어른들처럼 다그치거나 혼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동기들이 한씨네 집에서 자고 가는 날도 많다고 한다. 한씨는 동기들을 위해 닭볶음탕 같은 요리를 직접해준다. 동기들은 “(누님이)요리를 못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해서 놀랐다”고 했다. “평소엔 주로 라면만 끓여주신다”고 놀리자 한씨가 눈을 흘긴다. 동기 박주원(20·여)씨는 “어른 같지 않고 그냥 아이 같다”고 했다. “솔직히 나이가 많다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친구다”. 동기들 모두 이구동성이다.

추억 만들기 위해 학회장 도전

한씨는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인 다음 욕심을 냈다. 젊은 친구들과 지내면서 좋은 추억도 만들고 기억에 남을 일도 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지난해 11월 사회복지학과를 대표하는 학회장선거에 출마했다. 선거에서 당당히 학회장에 뽑혔다. 200여 명의 학생들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인지라 맘처럼 쉽지 않았다. 한씨는 “친구로서 잘 지내는 것과 학회장은 다르다”고 했다. 많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수렴하는 일이 녹록하지 않았다. 처음엔 ‘학생 입장이 아닌 교수님 입장만 대변한다’고 오해하고 섭섭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럴 땐 씩씩한 척 했지만 돌아서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잘해보겠다고 하는 일인데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했다.

그래도 “누님 힘내요”라며 티슈 한 장 몰래 챙겨주는 친구들 덕에 용기가 났다. 한씨는 “친구들이 나를 이끌어줬다. 힘들 때마다 나를 믿어주는 친구들을 보고 다시 힘을 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젠 동기들도 한씨의 마음을 잘 안다. 동갑내기 교수도 “수고한다”며 등을 두드리며 격려해준다. 얼마 전엔 남은 학생회비를 모아 겨울철에 난방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연탄을 전달했다. 연탄을 나를 땐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전 학생이 동참했다.

“집에 전화하셔서 밥 챙겨먹었니, 학원은 갔니 하고 항상 챙기세요. 그럴 때마다 누님이 엄마가 맞긴 맞구나 싶죠” 동기들이 전하는 한씨의 학교생활 일부다. 한씨는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 두 아들을 둔 엄마다. 학교생활에 열심이다 보니 살림살이는 조금 소홀해졌다. 다행히도(?) 남편의 음식솜씨가 자꾸 늘고 있단다. 지난 주말엔 남편 혼자 동치미까지 담갔다고 한다. “솔직히 미안하다. 다른 엄마들처럼 잘 챙겨주지 못한다” 대신 한씨는 아이들에게 인생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남편 음식솜씨 늘어 되레 미안

한씨가 학회장에 당선되고 나서 큰아들이 “엄마가 학회장이라니 너무 멋있다”고 자랑스러워한 것도 큰 힘이 됐다. 큰아들은 얼마 전 한씨가 추진한 사회복지학과 연탄나누기 활동에도 참여했다. 학원을 빠져야 했지만 공부보다 사랑을 나누는 활동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씨는 자신이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공부가 될 거라 믿고 있다. 그는 “학생들과 마음을 나누고 이야기를 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며 “옆에 누가 걸어가든 더불어 마음을 나누고 도우며 함께 걷고 싶다”고 말했다.

고은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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