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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경조사 봉투문화 유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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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얼마 전 미국 뉴욕 타임스에 우리나라의 경조문화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기사는 뇌물인지 선물인지 모를 돈 봉투를 줄 서서 기다리다 내고, 결혼 당사자보다 부모의 하객이 훨씬 많고, 축하하러 온 건지 밥 먹으러 온 건지 ‘눈도장’ 찍자마자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의 모습 등 불합리한 우리의 결혼문화를 잘도 꼬집었다. 그 기사를 본 미국인들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이상한 풍습도 있다면서 비웃을 것 같아 영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예전에 비해 예식장 풍경이 참 많이도 달라졌다. 저출산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좀처럼 아이들 얼굴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부모가 혼주 눈치 보느라 집에 두고 온 때문이리라. 한 사람분의 축의금을 내고 식권 두 장 타는 게 염치없어서 그런지 부부가 함께 참석하는 경우도 흔치 않은 일이 됐다. 언제부터 우리네 잔칫집 인심이 이렇게 야박해진 건지.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였던 옛날이 그립다. 그때는 지나가는 걸인도 불러 세워 융숭한 대접을 하지 않았던가.

훈훈한 결혼식 풍경도 없지는 않다. 몇 년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인사의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가기 전엔 갈까 말까, 봉투에는 얼마를 넣어야 할까 고민하다 마지못해 갔지만 오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하객도 적고 축의금도 받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너무 좋아 평소 혼주의 훌륭한 인품이 떠올랐다. 엊그제 다녀온 결혼식은 가지 말았어야 할 걸 그랬다. 축의금 접수대에서 젊은 남자 3명이 하객의 봉투를 받자마자 일일이 번호를 매기고 돈을 꺼내 확인한 뒤 장부에 기입하는 게 아닌가. 말리는 사람도 없어 더욱 기가 찼다.

문화라는 말을 붙이기조차 어색하지만 ‘경조사 봉투문화’도 이제는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새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희망적이다. 올해만 해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종창 금융감독원장 등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조용히 자녀의 혼례를 치렀다. 내가 근무하는 가천길재단의 이길여 회장도 10여 년 전 모친 장례를 조의금을 받지 않고 치러 당시 작은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경조사에 손님을 청하고 부조금을 내는 것은 우리의 오랜 미풍양속이다. 같은 부조 문화권인 청나라의 사상가 캉유웨이(康有爲)가 “조선인이 갖고 있는 뜨거운 마음의 표시”라고 찬탄했다던 훌륭한 관습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쌀과 곡식이 돈으로 바뀌면서 퇴색된 게 문제지. 그러니 무조건 없애려고 하거나 함부로 바꾸려고 하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다만 청첩장이나 부고장이 ‘외상값 청구서’나 ‘세금고지서’도 아닌데, 그것을 받고 속 태울 일은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박국양 가천의대길병원 흉부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