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위기 땐 인건비 조절이 열쇠 … 노조 유연해야 회사 살아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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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헤르만 지몬 박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은 1971년 미국이 금본위제를 폐지하면서 예견됐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통화정책을 통해 금리를 낮추고 달러를 더 찍어냈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달러 가치는 71년 이후 80%나 하락했고, 기업들의 무책임한 경영활동을 방치한 꼴이 됐다는 얘기다. 그는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가 해소됐지만 동시에 과도한 유동성이 주식·금·부동산 등으로 흡수되는 현상이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이로 인해 또 다른 거품이 생길 수 있다고 그는 예상했다.

-경기가 회복됐다가 다시 침체되는 더블 딥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마치 뭔가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 전문가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도 상반된 신호들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주식이 상승하고 일부 업계에서는 신규 주문이 늘고 있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실업률이 증가할 분위기다. 독일과 미국에서 폐차 보너스 프로그램이나 중고차 보장 프로그램 덕에 자동차 판매가 급증했지만 이는 내년 물량을 앞당겨 판 것에 불과하다. 정확한 예측은 어렵더라도 기업의 입장에서는 더블 딥의 가능성을 고려해 제2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히든 챔피언』에서 소개한 강소기업들의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행태는.

“히든 챔피언이라고 해서 특별한 비밀이 있는 건 아니다. 공통적으로 ‘혁신’을 했다는 게 중요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시장 점유율이 재분배되는 시기이고, 이때 누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해 판매량을 늘리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 재정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남들이 투자 못할 때 투자할 여력을 지닌 기업이 승리한다.”

-한국 기업들의 이번 위기 극복 노력을 평가한다면.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고 현명하게 대처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금융위기가 시작된 상황에서 삼성·현대차 등은 판매를 늘리고 마케팅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승리하는 기업』에서 주장하려던 내용과 같다. 1년 뒤의 상황을 보라. 놀라운 실적으로 그 결과가 나타났다.”

-현대차의 실업보장 프로그램이 장기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 반대다. 이 프로그램 실시 후 현대차 구매를 고려하는 잠재적 고객이 40%에서 60%로 늘었다. 중장기적인 판매 증가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 수치다. 다만 고객을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고객 대부분이 1년 안에 직장을 잃는다면 이런 프로그램은 회사에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다.”

-원가 절감 중 인건비 절감의 중요성을 지적했는데.

“경제위기 때는 고정비용보다 변동비용을 유연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인건비가 핵심인데, 노사관계가 우호적이면 근로시간 조정이나 급여 조정을 통해 대량 해고를 방지할 수 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최적의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제너럴모터스(GM) 자회사인 독일 오펠의 사례를 본받아 타협하는 정신을 길러야 한다. 오펠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수억 달러의 급여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경직된 노사관계라면 경제가 호전됐을 때 임금 수준과 근로시간을 원상 복구하기도 힘들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사회·경제적 격차가 커졌다. 이를 활용하는 전략이 가능한가.

“사회적 격차는 계속 커질 것이다. 고소득층을 겨냥한 보험상품 판매, 늘어나는 저소득층을 겨냥한 저가상품 시장 공략 등이 가능하다. 인도 타타자동차가 내놓은 초저가 차량이 대표적이다. 벌써 독일의 9개 부품 공급업체가 이에 참여하고 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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