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총기협회 "고어 낙선시키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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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앨 고어 부통령과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 또는 민주당과 공화당 만의 싸움이 아니다.

이들이 샅바를 쥐고 있는 모래판 주변에선 기업.노조.소수민족.사회단체.이익단체 등 온갖 사회세력이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른다. 어떤 면에선 후보들이 대리전을 치르는 셈이다.

요즘 가장 크게 고함을 지르는 이들은 전국총기협회 (National Rifle Association.회원 3백60만명)를 비롯한 총기소유권리 옹호세력이다. 이들은 "고어를 떨어뜨리고 부시를 당선시키겠다" 고 총을 빼 들었다.

총기 문제는 두 정당의 색깔을 가장 분명하게 구별해주는 대표적 이슈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고어 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은 총기규제를 밀고 있고, 부시 지사가 속해 있는 공화당은 총기옹호그룹의 오랜 후원자다.

지난주 샤롯에서 열린 NRA 연례대회는 고어 성토장이었다. 영화배우 출신인 NRA 회장 찰턴 헤스턴은 2만명의 회원들에게 "총기권리가 진정으로 위험에 처해 있다.

11월 8일(대선투표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누가 이겼는가에 따라 우리의 자유가 결정될 것" 이라고 외쳤다. 수석부회장 라피에르는 "고어는 순진한 어머니들에게 (총기사고의)겁을 주는 거짓말쟁이" 라고 비난했다.

협회의 수석 로비스트는 부시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이었던 제임스 베이커가 맡고 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협회는 정치자금으로 1천만~1천5백만달러를 쓸 것" 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특히 시골지역에선 선거에 나선 후보가 총기규제를 주창하는 것은 정치생명을 거는 일이었다. 총기권리론자들의 투표 응집력이 규제론자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94년 선거에서 적잖은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낙선한 이유 중 하나가 총기규제법을 지지한 것이었다. 그러나 95년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테러로 총기의 위험성이 드러나고 학생들의 집단 총기사고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96년 대선 때는 클린턴이 총기규제를 집중적인 이슈의 하나로 활용한 반면 공화당의 밥 도울은 자신이 총기권리를 감싼다는 것이 화제가 되는 것을 꺼렸다. 최근의 여론조사는 총기권리를 옹호하는 여론이 잘 해야 절반 정도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약 컬럼바인 고교사건 같은 대형 총기사고가 또 일어난다면 고어를 겨누고 있는 NRA의 총구는 흔들릴 것이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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