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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사막 남극을 가다] ⑤유통기한 지난 재료도 맛있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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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1만7000km 이상 떨어진 만리타향 세종기지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을까?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한여름에도 체감온도가 영하 10도는 기본인 세종기지에서 음식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세종기지 구내식당 ‘세종회관’에선 한식은 물론이고 양식, 중식까지 다양한 요리가 제공된다. 지금은 22차 월동대 소속인 백영식 요리사와 임무 교대 이후 1년간 세종기지의 음식을 책임질 강경갑 요리사가 같이 근무하고 있다.

식사 시간은 한국과 비슷하다. 아침식사는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점심은 낮 12시부터 오후 1시, 저녁은 오후 6시부터 7시까지다. 단기 체류가 많은 여름철에는 식사시간 전반 30분은 월동대원들이 식사를 하고, 후반 30분은 하계 대원들이 식사를 한다.

음식은 밥과 국을 기본으로 4가지 이상의 반찬이 나온다. 물론 한식이다. 월동대원만 남는 겨울철에는 반찬이 8가지나 나온단다. 체감온도가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잘 먹어야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식사 시간마다 대원들은 시킨 것도 아닌데 주방을 향해 “잘 먹겠습니다”를 연발한다. 마치 군대 식당 같다. 하지만 요식적인 구호가 아니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사의 인사다. 요리사도 “변변찮은 음식을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요리사는 세종기지에서 3D 직업이다. 야외에서의 작업은 많지 않지만 쉬지 못하고 계속 일해야 하는 까닭이다. 요리담당 대원은 적게는 20명에서 많게는 50명 가량의 식사를 매일 세 끼 준비해야 한다. 아침 식사를 위해 늦어도 새벽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다음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다 보면 오후 9시가 훌쩍 넘어간다. 주말에도 당연히 쉬지 못한다.

월동대원들은 요리사들의 피곤함을 알기 때문에 번갈아 가며 설거지를 도와준다. 가끔 요리사들이 주말에 쉴 수 있도록 다른 대원들이 식사를 책임지기도 한다.


기본 양념과 통조림 같은 가공식품, 김이나 김치 같은 한식 기본 반찬, 라면과 같은 인스턴트 음식들은 한국에서 들여온다. 그러나 감자, 무, 양파와 같은 채소와 고기, 달걀, 쌀 등 상하기 쉬운 것은 칠레에서 구입한다. 한국에서 수송기간이 최소 3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칠레에서 구입한다곤 하지만 세종기지에서 신선한 야채를 먹는 날은 보급 받은 뒤 1~2주 정도다. 보관이 쉽지 않다. 필자도 세종기지에 들어온 지 여러 날이 됐지만 아직까지 신선한 채소를 먹지 못했다. 그래도 누구 하나 음식에 대해 불평이 없다.


세종기지에서 사용되는 음식 재료 가운데 상당수는 유통기한을 넘긴 것들이다. 한 번 공급받으면 1년 이상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별 수가 없다.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직까지 음식을 먹고 탈이 난 사람은 없단다. 요리사들의 노력과 정성 때문인 것 같다.

내년도 월동대원을 위한 공급도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원래 7일이면 세종기지로 보급선이 들어올 계획이었지만 남극과 남미 사이의 파도가 거세지면서 보급선이 푼타 아레나스로 피항했기 때문이다.

백영식 세종회관 실장은 오늘 저녁식사 시간에 “배만 들어오면 신선한 재료로 푸짐하게 만들어 드릴 테니 조금만 참으라”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박지환 자유기고가 jihwan_p@yahoo.co.kr

*박지환씨는 헤럴드경제, 이데일리 등에서 기자를 했다.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박지환 기자의 과학 뉴스 따라잡기’를 연재했다. 지난 2007년에는 북극을 다녀와 '북극곰도 모르는 북극 이야기'를 출간했다. 조인스닷컴은 내년 2월 초까지 박씨의 남극 일기를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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