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 춤추는 군수] 2.허점많은 무기구매 시스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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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무기상들은 구매 실무자가 바뀌면 경력.학력.고향 등 그에 대한 기본적인 개인 정보는 물론 최근 고민과 부인의 여고 동창 같은 은밀한 신상 내용까지 파악해 접근합니다. 보통 개인당 정보량이 A4 용지로 서너장은 되지요. "

몇년 전 무기 정보 유출사건을 다뤘던 군 법무관 A씨의 증언이다.

그는 "무기 도입 추진과정이 대부분 베일에 가려 있어 무기상들이 이를 뚫기 위해 실무자의 시시콜콜한 개인 정보를 수집, 로비를 시작한다" 고 말한다.

그는 또 "무기상과 구매 실무자의 관계가 사적으로 시작되다 보니 자연히 향응제공.금품수수 등이 뒤따르고 그 대가로 정보가 유출된다" 고 덧붙였다.

군사 전문가와 방산업체 관계자들은 무기 획득과정이 '군사기밀' 이라는 이유로 상당부분 공개하지 않아 로비스트들의 음성적 개입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단 사업이 추진되면 무기상들은 군 요구 성능.구매계획 등을 빼내기 위해 사활을 건 로비를 펼친다는 것이다.

특히 군에서 사들일 무기의 성능.수량.예산 등이 담긴 구매계획서를 손에 넣으면 이에 맞춰 입찰자격 등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여간 유리한 게 아니다.

실제로 1990년대 군 과학화작업의 하나로 추진된 C-4I(지휘통제시스템)사업의 입찰과정에서는 정보 유출 논란이 일었다.

입찰 업체들은 "군이 한 업체에만 기밀 정보를 제공해 불공정 경쟁이 우려된다" 며 이의를 제기했다. 몇차례 입찰이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겨우 사업은 추진됐지만 관계자들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6월 "2, 3급 기밀로 분류돼 있던 무기 구매 계획.예산.집행 내용 가운데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항을 제외한 90% 이상을 일반에 공개하겠다" 고 발표했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선 "공개 내용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정보들이어서 별 도움이 안된다" 며 '생색내기' 라고 지적한다.

기밀주의와 함께 음성적 로비의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복잡한 무기 구매 절차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무기 획득 절차가 38단계에 달했습니다. 단계마다 서류를 몇개씩 내다보면 총 제출 서류가 1백종이 넘을 때도 허다합니다. 이때마다 담당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니 비리가 없겠습니까. " 전직 무기상 B씨의 경험담이다.

그는 "상부 보고와 결재과정에서 일이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기중개상들이 '급행료' 를 낼 수밖에 없다" 고 전했다.

국방연구원(KIDA) B씨는 "군 당국이 구매 단계마다 의사 결정자의 이름을 적시하는 등 일부 정보 공개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충분치 않은 상태" 라며 "만성적인 의혹에서 벗어나려면 공개 범위를 더욱 확대하고 구매 절차를 좀더 단순화해야 한다" 고 말했다.

또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무기 결정과정에 국방과학연구소(ADD)등의 전문가 집단이나 민간인들을 참여시킨다면 무기상들의 부적절한 로비가 크게 줄어들 것" 이라고 조언했다.

김민석 군사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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