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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 대학생 위해 미군기 '아름다운 비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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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2002학년도 정시모집 특별전형을 통해 연세대에 합격한 신형진군의 수업 모습.

전신마비 대학생이 미 국방부의 배려로 미군기를 타고 귀국해 회생의 길을 찾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신형진(20)군은 지난 7월 초 친지 방문차 어머니와 미국에 갔다가 사흘 만에 쓰러져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 실려갔다.

바뀐 음식물에 이상이 있었던 듯 식사 도중 통증을 호소하며 의식을 잃은 그는 급성 호흡기질환과 폐렴 등 합병증을 일으키며 중태에 빠졌다.

신군은 근육의 힘이 서서히 약해져 몸 전체가 마비되는 '척추성 근위축증' 환자다. 미국 의사들은 "빨리 귀국시켜 주치의에게 맡기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며 손을 들었다. 그러나 중환자인 신군이 병상에 누운 채 의료진과 함께 여객기를 타려면 비즈니스석 여러 개에 해당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신군의 부모에게서 이런 사정을 들은 항공사들은 하나같이 손을 내저었다. 이 때문에 신군은 쓰러진 지 석달째 이역만리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야 했다.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유재건 국회 국방위원장(열린우리당)이 나섰다. 그는 친분이 두터운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신군의 안타까운 소식을 알렸다. 러포트 사령관은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에게 "역경을 이겨낸 장한 젊은이를 도와줄 길을 찾고 싶다"고 보고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미 국방부에 신군을 수송할 방법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는 지난주 러포트 사령관에게 회신을 보냈다. "수속이 완료되는 대로 국방부 군용기(DOD aircraft)를 동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기내에서 첨단 진료가 가능한 이 군용기는 국방부가 해외의 미군 환자 수송을 위해 특수 제작한 몇대 안 되는 '공중 병원'이다.

유 위원장은 19일 "미국의 특별한 배려로 군용기 동원이 가능하게 됐다. 현재 미 국방부 측이 병원 측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르면 20일께 신군의 귀국 일정이 확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군은 연세대 학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영웅'이다. 생후 6개월 만에 척추성 근위축증에 걸렸고 의사들은 "진행성 불치병인 데다 악성이라 언제 숨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군은 38세에 늦둥이를 낳은 어머니 이원옥(58)씨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정상인들이 다니는 초.중.고교를 5등 안팎의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수학 만점을 기록할 정도로 명석한 머리에다 의지력도 강한 신군은 연세대 정시모집 특별전형에 수능 2등급의 성적으로 합격했다.

그는 어머니가 하루도 빠짐없이 밀어주는 휠체어로 등.하교했고 밤에는 역시 어머니가 한장 한장 넘겨주는 책장을 읽어가며 공부했다고 한다. 키 1m60㎝에 몸무게 24㎏인 신군은 손가락 끝 1㎜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전신 불구자다. 그러나 자신의 눈동자를 깜박이면 작동하는 특수 마우스 '퀵글랜스'로 인터넷은 물론 친구들과 채팅도 자유자재로 해왔다고 한다.

캠퍼스에서 늘 밝은 표정을 잃지 않고 성적도 최상위를 유지해온 신군에게 친구들은 '한국판 스티븐 호킹 박사'란 별명을 붙여줬다. 그의 꿈은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장애인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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