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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Knowledge <113> 재미있는 잡초 이름의 유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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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고 또 자라나는 생명력의 대명사, 잡초(雜草ㆍweed). 끈질긴 사람을 두고 ‘잡초 같다’고들 합니다. 필요 없는 것을 가리켜 잡초라고 부르기도 하죠. 국내에는 총 1400여 종의 잡초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잡초라고 싸잡아 명명하기 머뭇거려질 만큼 많은 숫자죠. 실제로 잡초들도 제 나름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름 속에는 잡초들의 생물학적 특성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숨결도 스며들어 있습니다. 정겨운 우리 잡초의 이름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홍혜진 기자

국어사전을 한번 찾아볼까요? 잡초란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풀로,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고 병균과 벌레의 서식ㆍ번식처가 되며 종자에 섞이면 그 작물의 품질을 저하시킨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잡초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큼 악의에 찬 설명이네요. 잡초는 종자를 맺는 속도가 빠르고 종자생산량도 많습니다. 벼는 한 포기에 1500~3000개의 씨앗이 열리는 데 비해 피는 7000개, 망초는 13만~25만 개, 가시비름은 23만 개나 열리니 번식력이 왕성할 수밖에 없겠죠.

우리 나라에 1400여 종 살고 있어요

개불알풀 꽃 [중앙포토]

쓸모 없는 풀이라지만 잘 들여다보면 저마다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개불알풀·애기똥풀·며느리밑씻개·노루오줌·털개구리미나리…. 웃음이 터질 정도로 재미있고 황당한 이름들입니다.

새색시를 뜻하는 우리말 ‘각시’는 말 그대로 색시처럼 작고 귀엽고 깜찍한 풀 이름에 붙습니다. 각시갈퀴나물·각시그령·각시비름이 그 예죠. 가까이서 보면 둥그런데 솜털이 가득한 게 마치 빡빡 깎은 중 머리와 같다고 해서 ‘중대가리풀’, 독을 품고 있어 먹으면 광대처럼 미친다고 해서 ‘광대수염’이라고 이름 붙여진 풀도 있습니다.

새(鳥)에게서 이름을 빌린 경우도 까치수영ㆍ꿩의밥ㆍ능수참새그령ㆍ제비꿀ㆍ참새귀리 등 다양합니다. 대부분 종자 크기가 새 모이와 같이 작은 데서 유래했습니다.

이와 같이 생김새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 있는가 하면 갯아지풀ㆍ들묵새ㆍ산여뀌ㆍ논뚝외풀처럼 발생하는 곳에 따라 지어진 것, 미국가막사리ㆍ서양벌노랑이ㆍ유럽쥐손이와 같이 유래한 국가에 따라 지어진 것도 있습니다. 냉이와 비슷하다고 해서 나도냉이, 송이풀과 같다고 해서 나도송이풀이라고 부르는 잡초도 있죠. 독성이 강해 인체에 해로우면 독미나리ㆍ나도독미나리ㆍ독보리처럼 ‘독’이 붙기도 합니다.

계절과 시간의 의미를 담은 이름도 많습니다. 봄망초ㆍ봄맞이꽃ㆍ가을강아지풀 등은 주로 자라는 계절을 뜻하는 접두어를 달고 있죠. 달이 있을 때 핀다고 해서 ‘달맞이꽃’, 한여름 더위를 먹었을 때 효과가 있다고 해서 ‘더위지기’라는 풀도 있습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이인용 박사는 최근 발표한 논문 ‘우리나라 잡초이름으로 알아본 언어학적 고찰(2009·한국잡초학회지)’에서 우리나라에 발생하는 638종의 이름을 분석했습니다. 이 박사는 “우리나라 잡초이름에는 욕설이나 신체ㆍ사물을 비하하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도 많고 생김새를 비유해 기가 막힌 이름을 붙인 것도 많다”며 “이름마다 유래가 있어 그 배경을 알게 되면 선조의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잡초도 가끔은 효자초

잡초도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낼 때가 많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토양 침식을 막는 것이죠. 경사가 큰 지역은 6~8월 여름 장마철마다 흙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곤 합니다. 이때 튼실하게 뿌리를 내린 잡초가 단단하게 흙을 붙잡아 줍니다. 또 뚝새풀과 같이 자생력이 왕성해 다른 잡초들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예도 있습니다. 무성하게 자라 다른 잡초를 막고 있다가 벼를 심을 때쯤엔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그야말로 '친환경 자연 제초제’인 셈이죠. 개망초 등은 향기가 좋아 액을 추출해 방향제에 사용하는 등 자원화하고 있습니다. 시험적이지만 일부 잡초는 다른 잡초를 죽일 수 있는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이를 실용화하려는 작업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알고 보면 사람에 득이 되는 잡초도 많습니다. 잡초 전문가인 이 박사도 “언젠가는 잡초들이 빛을 볼 날이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답니다.

도움말=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이인용 박사

참고자료=최신잡초방제학 원론(2007), 잡초(형태·생리·생태)(2004), 한국귀화식물 원색도감(1995), 식물 뿌리깊은 내 친구야(2003)

◇피 (Echnochloa spp)

피는 그 어원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많지만 까다로운 제초작업으로 농민들의 피를 말린다는 뜻에서 붙여졌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생김새가 벼와 닮아서 초기에 미리 솎아 제거하기 힘든 잡초이기 때문이죠. 6~7월 한여름철 뜨거운 볕 아래 손으로 일일이 다 뽑다 보면 말 그대로 피가 마를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제때 제거하지 않으면 벼의 피를 빼앗아 수량을 감소시킨 데서 유래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지금은 농민들에게 최고의 골칫덩이지만 과거 춘궁기 때는 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피죽도 못 끓여 먹었다’는 표현도 이를 두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개불알풀 (Veronica didyma var. lilacina)

민망하지만 말 그대로 과실 모양(사진)이 개의 불알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원래는 일본어로 명명됐던 것을 한글로 그대로 해석한 이름입니다. 학명의 중간 이름인 ‘didyma’는 ‘쌍생(雙生)’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학명은 V. cainotesticulata인데 ‘cainotesticulata’ 또한 ‘개의 고환 모양’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개불알풀은 주로 제방이나 길 둑 풀밭에 발생합니다. 줄기 길이는 약 10~20㎝인데 아래쪽으로 갈라지며 땅 위를 넓게 덮습니다. 개불알풀과 비슷한데 누워있다고 해서 ‘눈개불알풀’, 서있다고 해서 ‘선개불알풀’이라고 불리는 잡초도 있습니다.

◇망초 (Conyza cana-densis)

구한말 외국으로부터 서양문물과 함께 이 식물이 들어온 후에 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됩니다. 망초는 북아메리카에서 왔는데 주로 겨울에 발생하는 잡초입니다. 망초의 종자수는 주당 13만~25만 개나 됩니다. 열매에는 작고 가는 관모(冠毛), 즉 털이 달려 있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종자를 퍼뜨립니다. 흙 속에서만 112년을 산 종자가 있을 만큼 수명이 길고 자생력이 강합니다. 건물이나 주거지에 침입해 2m 이상 자라나면 건조한 시기에 심각한 화재의 원인이 되기도 하죠. 어린 잎은 데쳐서 나물로 먹기도 합니다.

◇며느리밑씻개 (Persicaria senticosa)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이 깊었던 시절 시어머니가 마음에 안드는 며느리가 미워 용변을 보고 엉덩이를 닦을 때 사용하도록 한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줄기와 잎자루에 날카롭고 긴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어 잘못 긁히면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이죠. 학명을 살펴볼까요? 라틴어 ‘sentis’는 ‘가시가 많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갈고리 같은 가시 덕분에 어느 물체에든 잘 붙습니다. 보통 10월이면 검은색의 열매가 맺히는데 그보다는 어린 순을 나물로 먹는 데 알맞습니다.

◇애기똥풀 (Chelidonium majus var. asiaticum)

이 풀에 상처를 내면 진한 노란색의 즙액이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그게 마치 아기가 설사할 때 눈 똥과 비슷하다고 해서 ‘애기똥풀’이라고 부릅니다. 전국 각지에서 5~8월이면 노란색의 꽃을 피웁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애기똥풀에는 ‘첼리도닌(chelidonine)’이라는 물질이 들어있어 항암 치료 효과가 입증됐다고 합니다. 독성을 품고 있어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되지만 한방에서는 ‘백굴채(白屈采)’라 하여 꽃과 잎ㆍ줄기를 약용으로 쓰는 예가 있습니다. 10~20g을 잘라서 알코올 100mL에 담가두었다가 곤충에 물렸을 때 바르기도 합니다.

◇도깨비가지 (Solanum carolinense)

도깨비 뿔과 같은 가시가 있다고 해서 ‘도깨비’라는 접두어가 붙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도깨비처럼 나타나 농가에 피해를 준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죠. 가지와 같이 백색ㆍ연한자주색 꽃이 피는데 북아메리카에서 들어왔고 국내에서는 1978년에 최초로 보고됐습니다. 일부 목초지나 낙농가의 사료용 옥수수 재배지에서 발생되고 있는 유해 잡초입니다. 가시가 억세 가축의 사료로 쓸 수 없고 뿌리의 번식력이 왕성해 방제도 어렵습니다. 열매는 주황색인데 지름 1.5㎝의 둥근 모양으로 은행 열매처럼 심한 악취가 납니다. 종자가 112년씩 살아남기도 해 한 번 생겼다 하면 없애기 힘든 잡초랍니다.

◇강아지풀 (Setaria viridis)

강아지풀은 이삭의 모양이 강아지 꼬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머리부분을 손바닥 위에 높고 오므렸다 펴길 반복하면 강아지처럼 앞으로 기어가는 데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죠. 풀이 자라는 데 필수 성부인 질소를 흡수하는 능력이 커 작물의 성장을 막기 때문에 제거해야 합니다. 잎이 피부에 닿으면 한동안 가렵습니다. 열매가 익으면 작은 씨가 떨어져 나가는데, 작고 가벼워 물 위에 오랫동안 떠다니다가 전파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구황식물로 쌀이나 보리와 섞어서 밥을 하거나 곱게 짓찧어 개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가시박 (Sicyos angulatus)

박과 식물로 초가집 지붕에 매달린 박과 비슷한데 열매에 가시가 났기 때문에 가시박이라고 불립니다. 북아메리카에서 온 식물로 과거에 사료용 옥수수 종자 속에 섞여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죠. 토양 환경에 잘 적응해서 모든 토양 조건에서 잘 자랍니다. 토종식물이나 도로변 조경나무를 휘감고 올라 말라 죽게 해 악명이 높습니다. 국내 토종 식물의 종다양성 확보에 해를 끼쳐 환경부에서는 생태계 교란 유해식물로 지정했을 정도죠. 가시 때문에 제초가 어렵고 4~9월 꾸준히 발생하는, 말 그대로 ‘잡초 중의 잡초’입니다.



뉴스 클립에 나온 내용은 조인스닷컴(www.joins.com)과 위키(wiki) 기반의 온라인 백과사전 ‘오픈토리’(www.opentory.com)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세요? e-메일 기다립니다. newscl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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