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 춤추는 軍需] 1.성능·가격보다 "사람이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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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빅4 프로젝트를 잡아라-.

린다 김 사건으로 사회가 온통 시끄러운 와중에도 국방부가 위치한 서울 용산구 삼각지 주변에선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물밑 로비전' 이 펼쳐지고 있다.

국방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차기 잠수함사업(KSS-2)▶차세대 전투기사업(FX)▶대공(對空)미사일사업(SAM-X)▶대형 공격헬기사업(AH-X)등 4개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무기상들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프로젝트당 사업비가 최소한 1조원을 넘어 무기상들이 거머쥘 수 있는 공식 커미션만도 3백억원대(총사업비의 3% 기준).

사업자 선정이 내년 9월까지 끝나기 때문에 무기상과 계약을 한 사설(私設)로비스트들이 군.정치권의 인맥을 총동원해 뛰고 있다.

국방부 조달본부에 공식 등록된 무기거래상은 4백40여곳. 이들이 고용하고 있는 로비스트만도 줄잡아 수백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중 P.S.U사 등 메이저 업체들이 빅4의 중개권에 한발 가까이 다가서 있다.

차기 잠수함사업을 따내려는 P사는 10여명의 전직 군인.관료들을 로비스트로 기용했다.

이들 중에는 현직 해군참모총장의 고교동창.사관학교 동기.고향 친구 등이 끼여 있다.

차세대 전투기사업에 뛰어든 미국 보잉사(F-15 전투기)의 국내 에이전트 U사는 공군 장성 출신 2~3명을 영입했다.

이들은 공군 수뇌부의 사관학교 동기거나 동향이다. 벌써 공군 내에선 "한.미 관계를 감안해 미제인 F-15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 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전관 예우' 로 충분한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외국업체뿐만 아니라 삼성.현대.대우 등 국내 대기업 산하의 방위산업체들도 육.해.공군의 장성 출신을 고문.이사로 초빙, 로비 전선에 나섰다.

차기 잠수함사업권을 노리는 로비스트 A씨는 "현재의 무기도입 구조에선 제2, 제3의 린다 김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고 말한다.

미국 등지와 달리 사실상 로비를 양성화해 놓지 않은데다 우리 군에 음성적 로비를 막아낼 무기구매 시스템도 없기 때문이다.

성능이 좋고, 가격이 싼 무기라고 해서 꼭 도입 장비로 채택되지는 않는 게 로비스트 세계의 불문율이다.

다른 무기중개상 B씨는 "무기 품질과 로비 강도는 반비례한다" 며 "성능만 믿고 방심했다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고 말했다.

또 다른 로비스트는 "확실한 정책 결정권자만 잡으면 성능, 가격, 기술이전, 주한미군과 상호 운용성 등의 평가 요인 중 한두 개에 가중치를 두는 방법으로 사실상 내부 결정이 난 사업도 뒤집을 수 있다" 고 설명했다.

국내 대기업에서 일하는 예비역 중장 출신 C씨는 "군이 원하는 무기를 찾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반대로 군의 입장을 무기회사에 알려주는 순기능적인 로비 과정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김민석 군사전문기자.정용환.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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