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맞는 5·18] 中.대중문화에 분 변화의 바람-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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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5.18' 은 정신세계를 다루는 문화예술분야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5.18 이후 문화예술분야에서 광주는 '민중' 이나 '저항' 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문화예술의 각 분야는 어떤 식으로든 광주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 중에서도 5.18의 참상을 가장 선명하게 고발할 수 있었던 매체는 영화.연극.드라마와 같이 눈으로 보여주는 공연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공연들은 '공연장을 확보하는데 '공안당국의 사전검열과 감시망을 피할 수 없어 80년대 중반까지는 거의 5.18을 다루지 못했다.

80년대초 감시망을 뚫고 5.18을 가장 널리 알린 매체는 노래였다.

운동가요로 흔히 불린 노래는 대부분 광주의 슬픔과 참회를 담은 것들이었으며, 80년대를 통해 운동가요가 극소수 운동권에서만 아니라 대중적으로 불리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영화.연극.방송이 5.18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의 흐름을 타면서부터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이념적 무게를 담은 작품들은 상업적인 작품들에 밀려 일반인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됐다.

이에 따라 5.18을 소재로 한 작품의 예술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대중문화 속에 담긴 5.18의 영향을 살펴본다.

5.18을 다룬 작품의 수는 많지 않다.

일반 극장에 걸린 영화는 1990년에 나온 '부활의 노래' 와 96년작 '꽃잎' , 올해 개봉된 '박하사탕' 이 고작이다.

시중 극장용이 아닌 대학가나 노동현장.소극장 등에서 상영할 목적으로 만든 16㎜ 영화로는 '칸트씨의 발표회' (87년), '황무지' (88년), '오 꿈의 나라' (89년)가 있다.

김태영 감독의 '칸트씨의 발표회' 는 정신질환을 앓는 젊은 이의 의식 속에 간헐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잘린 젖가슴 등)나 당시 진압군의 작전명이었던 '화려한 휴가' 같은 제목을 통해 우회적으로 5.18의 충격을 묘사했다.

그러나 김감독은 '황무지' 에서 광주 진압군인 공수부대원을 등장시켜 정면으로 시대의 상처에 접근했다.

장산곶매라는 영화운동 집단이 만든 '오 꿈의 나라' 는 당시 대단한 사회적 반향을 불렀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광화문에 성조기가 걸리는 것으로 처리해 5.18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장산곶매는 공권력의 상영정지 방침에 굴하지 않고 대학가를 돌며 상영을 강행해 5.18을 사회문제화하는데 기여했다.

장산곶매는 이후 '파업전야' (91년), 전교조 문제를 다룬 '닫힌 교문을 열며' (92년)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영화를 사회변혁의 매체로 적극 활용했다.

'오 꿈의 나라' 를 공동연출했던 이은(38).장윤현(33).장동홍(33)은 상업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장동홍은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의 연출을 맡았고, 장윤현은 '접속' 에 이어 '텔미썸딩' 으로 흥행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이은은 명필름의 대표로 '해가 서쪽에서 뜬다며' '섬' 등을 제작하는 한편 영화진흥위원회의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90년에 나온 '부활의 노래' 는 35㎜ 상업영화로는 처음으로 5.18을 다뤄 일반시민들이 80년대 역사를 되새기는 데 일조했다.

비록 서울관객이 2만명에도 못미쳤지만 당시 검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업영화가 소재의 영역을 확대한 것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96년에 나온 '꽃잎' 은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감독인 장선우가 제작해 기대를 모은 영화였다. 채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꽃잎' 은 계엄군의 진압 당시 어머니를 잃은 열다섯살 소녀의 기억을 통해 역사의 비극을 되살리는 한편 우리들 속에 내재된 폭력성을 드러냈다.

연초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은 시간을 거슬러가는 독특한 형식을 통해 70년대 이후 한국의 현대사를 훑어나갔다. 시대별로 단락을 짓는 이 영화에서 '광주' 는 진압군으로 차출된 주인공의 회상을 통해 되살아난다. 지금까지 나온 5.18영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영화평론가 이효인씨는 "상업자본에 얽매인 충무로 영화계에서 5.18을 다루기란 쉽지 않다" 며 "단편영화나 독립영화 쪽도 당장 눈에 띄는 사건에만 집착해 역사를 의식하는 작품을 찾기 힘들다" 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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