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을 말한다] '한국의 명무명인전' 기획 박동국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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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1990년 11월 21일 국립국악원 소극장 무대에 처음 올려진 '한국의 명무명인전(名舞名人展)' 은 올해로 18회를 맞이한다.

'명무명인전' 을 처음 기획됐을 당시 우리 전통공연물은 서양 문화에 밀려 일반인에게 잊힌 존재로 전락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인간문화재들은 점차 연로해가고 있는 데다 지방에 거주해 공연할 기회도 적었다.

이들을 무대로 불러내 전통문화를 부흥하고자 한 것이 최대 목적이자 기획의도였다.

다행히 전통예술공연으로는 드물게 공연마다 객석을 꽉 메우는 일이 거듭돼 '공연계의 신기원' 이라는 평까지 들었다.

'명무명인전' 은 다른 기획사에서도 유사한 기획을 시도하는 촉매가 됐다.

우리나라 공연사에서 전통예술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10년이 넘게 정기 공연을 가진 예는 지금까지 없다.

그간 17회의 '명무명인전' 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는 했지만 열악한 국내시장을 생각할 때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해마다 공연을 진행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부정적인 인식이다. 전통예술이라고 하면 뭔가 얕잡아보는 부정적인 인식이 알게 모르게 확산돼 있다.

이 때문에 막상 공연일정을 잡아놓고도 협찬사를 찾지 못하는 일도 있었고, 금전적인 도움은커녕 명칭만 사용하겠다고 해도 후원사로 나서기를 꺼리곤 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전통예술 보전이라는 사명감과 전통예술을 사랑하는 예술인.일반인의 덕분에 공연을 지속, 지금은 조금씩 긍정적인 인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명무명인전' 은 화려한 명성이나 직함을 갖고 있는 사람보다는 타고난 춤꾼, 춤사위가 빼어난 이들을 출연자로 선정해왔다.

공연 레퍼토리도 순수 전통춤과 민속춤, 각 지방의 특색있는 춤들을 고루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서민들이 주로 췄던 민속춤은 세련되고 매끄럽지는 않지만 보면 볼수록 맛이 나는 뚝배기 장맛 같은 춤이어서 그 가운데 일반인들이 감상할 기회가 적은 춤을 위주로 매년 다양하게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는 16~17일 오후 7시 30분 호암아트홀에서 제18회 '명무명인전' 이 열린다.

첫째날에는 김천흥(춘앵전), 양태옥(진도걸북춤), 김덕명(양산사찰학춤), 김자은 스님(번뇌)등, 둘째날에는 임이조(한량무), 강윤나(태평무), 엄옥자(살풀이), 송준영(훈련무)등이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92세의 김천흥, 82세의 양태옥, 77세의 김덕명 인간문화재들이 꾸미는 무대다.

김천흥의 '춘앵전' 은 조선말 궁중에서 추던 엄숙하고 정적인 분위기의 춤인데 반해,

김덕명의 '양산사찰학춤' 은 사찰에서 췄던 민속춤이면서 마치 학이 날아오르려는 날갯짓과 같은 활달한 춤이다.

또 '진도걸북춤' 은 들에서 행해졌던 진도북놀이를 하며 췄던 춤으로 다른 지방의 북춤은 한 손에 북을, 다른 손에 북채를 쥐고 추지만 이 춤은 북을 몸에 걸고 양손에 북채를 각각 쥐고 추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점을 눈여겨 보며 감상하면 즐거움이 커질 것이다.

02-585-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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