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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여자는 회사의 미래다

중앙일보

입력

영업이라고 하면 술 접대부터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요즘은 이보다도 깔끔하게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것이 유리할 때가 많다. 몸 망가지고 실속도 없는 술보다는 몸도 안 망가지고 실속도 ‘충만한’ 접대를 더 선호하기도 하고. 한방에 왕창 물량으로 쏟아 붓는 방식보다는 가랑비에 옷이 젖게, 꾸준하게 관리하는 편이 더 유리한 경우도 많고.

차장 승진과 더불어 그녀에게 부여된 첫 번째 특명은 프레젠테이션의 업그레이드! 이제까지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개념의 PT 자료를 설계해서 선보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업종에서는 물론 다른 업종과 비교하더라도 확연하게 뛰어난 설계’ 그것이 사장님이 원한 바였다. 일단 보이는 것에서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라는 명령이었다.

마케팅 부서에서 나름 이미지 홍보 분야에서 ‘각’을 세워왔던 강 차장으로서는 내심 반가운 명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붙여진 명령이 있었으니, 모든 PT 자료를 여성용과 남성용으로 버전을 달리해 디자인하라는 지시였다. 아니, 어떤 의도로?

최근 들어 고객사에 입찰을 들어가 PT를 할라치면 여성 평가위원들이 들어오는 경우도 많은데, 전체 위원 중에서 여성위원 비중이 더 높을 경우에는 여성용 버전으로, 남성위원 비중이 더 높을 경우에는 남성용 버전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었다.

주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PT를 할 때에는 반드시 여성과 남성으로 반반씩 팀을 구성해서 내보내고, 설명도 남녀 2인조로 역할을 나눠서 하되, PT 이후에는 심사위원들 반응을 각각 보고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입찰과 관련한 모든 PT는 강 차장의 책임 하에 진행하고, 강 차장은 가능한 모든 PT에 참석해서 심사위원들의 반응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를 만들어 기록으로 남기라는 것, 그것이 사장님의 지시였다.

처음엔 ‘그런 잡일을 자장에게?’라는 의문이 없지 않았지만, 새로운 PT 자료를 기획하고, 디자이너까지 동원해서 만들게 하고, 그것을 가지고 나가 PT를 시키고, PT와 관련한 고객사 평가위원의 반응을 기록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 일이 적성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 때 즈음, 사장님이 던진 한 마디는 이랬다. ‘그 일, 나 같은 남자는 절대 못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야!’ 미션까지 부여하더라는!

최근 여성들이 각 분야에서 약진 중이다. 여성들은 특히 시험에 강한 면모를 보여서 각종 고시와 자격증 합격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의 고용 비중은 선진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여성 인재들이 여전히 미개척, ‘처녀지’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초고령화 사회의 노동력 부족을 메울 대안은 여성밖에 없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고 있지만, 인적자원이라는 면에서 여성은 ‘아프리카 오지의 개발 안 된 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소비 시장을 주도하면서 위미노믹스(Women+Economics) 시대를 열고 있기도 하다. 경제력 있는 아줌마 또는 처녀들이 소비의 80%를 결정하는 시대. 그런 시대를 맞아 기업들도 이른바 ‘이브 마케팅’에 열중하고 있다. 이런 이브 마케팅 열풍은 관련 분야를 중심으로 여성들의 추가적인 취업증가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관점에서 강 차장을 발탁한 P사의 사장은 선구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강 차장에 따르면 그는 일찍이 남녀의 뇌 기능 차이에 눈을 뜨고, 세상의 변화를 예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뇌 기능의 차이?

마이클 거리안과 바버라 애니스는 ‘회사 속의 남과 여 그 차이의 심리학’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남성은 회백질이 여성보다 약 6.5배나 많고 여성은 백질의 양이 남성의 10배에 달한다... ...남성이 특정 부위에 한정된 회백질 처리형 업무에 뛰어난 반면 여성은 뇌 여기저기로 분산되어 있는 백질 부위에서 정보들을 통합하고 융합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도 이런 차이에서 비롯한다.’

또? 여성의 경우에는 뇌이랑 활동도 활발해서 다양한 경험과 관련한 정보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연결시켜 분석을 해낼 수 있다는 진단이다. 남녀의 두뇌가 구조적으로는 물론 기능적으로도 다르다는 사실이 조금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이것은 엄연히 실험을 거쳐 확인된 사실이다. 강 차장을 발탁해서 투입한 이유도 결국은 이런 여성 두뇌의 장점을 사업에 활용하려는 의도였다는 것 아닌감?

이런 두뇌의 차이가 잘 공감가지 않는 남성분들은 부인 또는 애인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답답하게 여겼던 적을 한번 회고해보기 바란다. 좀 체 결론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 주변적인 이야기들만 잔뜩 늘어놓곤 하는 그녀, 결국 당신이 짜증을 내면서 이렇게 말을 던진 기억 말이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역시 남성들은 결론‘ 지향적이다!

이런 남녀 두뇌의 차이로부터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점은 앞으로 여성들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직장풍경도 많이 바뀔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성들이 펼쳐 보일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루이 아라공의 ‘미래의 시’에 잘 함축돼 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여자로 하여 낡은 세계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영혼을 장식하는 컬러 물감이다.’ 컬러 물감? 내가 보기에 여자들은 남자의 영혼만이 아니라 세상을 또 회사를 칼라로 물들일 것이다. 난 칼라풀한 세상이 ‘마~이’ 기대된다. 한편으론 그녀들의 질투가 만들어낼 ‘아주 칼라풀할’ 세상이 조금 두렵긴 하지만 말이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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