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은행합병 어떻게 돼가나] 정부의 밑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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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은행권에 또 한차례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2단계 구조조정이라지만 핵심은 합병을 통한 은행산업의 재편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정부는 '시장에 의한 자발적 합병' 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은 다르다. 마냥 시장에만 맡겨놓기에는 시간이 다급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통제 가능한 은행을 대상으로 금융지주회사를 만들어 민간은행들을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정부가 그리고 있는 2차 구조조정의 밑그림과 떠돌고 있는 합병 시나리오, 그리고 1998년 1차 구조조정으로 탄생한 4개 합병은행의 현주소를 집중 진단한다.

2단계 은행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정부의 복안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단계 구조조정에서 정부가 핵심목표로 설정한 것은 금융부실 청소와 함께 인수합병을 통한 은행산업 재편이다.

특히 합병을 통한 구조조정 필요성을 정부가 누차 강조함에 따라 은행과 금융시장이 정부의 밑그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구조조정 서두르는 정부〓내년으로 다가선 새로운 예금자보호제도 시행에 앞서 연내에 부실은행 정리를 끝내야한다는 것이 정부입장이다.

은행이 파산할 경우 원리금을 합쳐 1인당 2천만원까지만 물어주는 새 예금자보호제도는 고객들에게 안전하고 우량한 은행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하고, 따라서 부실은행들은 예금이 급격히 빠져나가 도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엄청나게 키운 외국의 초대형 은행들과 국내외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은행들의 대형화는 늦출 수 없는 과제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이헌재 재경부장관과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을 비롯한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들은 최근들어 공.사석에서 은행 대형화를 주문하고 있다.

◇ 정부의 밑그림은〓정부는 은행 합병을 주도할 주체로 금융지주회사를 먼저 도입한 후 '시범케이스' 격으로 정부가 사실상 주인인 은행들간의 합병을 성사시키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최근 "5월안에 금융지주회사 도입 관련법 시안작성을 마무리 짓고 곧바로 지주회사 설립추진에 들어가겠다" 고 강조했다.

재경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관계법 개정과 대상 금융기관 선정작업에 들어가 최근 시안마련을 끝낸 상태. 현재 공정거래위.국세청등과 법안 조율을 진행중이다.

이런 속도라면 이르면 하반기 초엔 금융지주회사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본지가 입수한 재경부 내부자료에 따르면 재경부는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한 울타리에 묶는다는 기본 원칙아래 두 가지 대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한 가지는 한빛.조흥.평화은행을 편입시키는 은행들만의 지주회사 구성안이며, 다른 한가지는 여기에 대한생명을 함께 묶는 방법이다.

외환은행은 대주주인 코메르츠방크의 입장을 감안, 지주회사 편입가능성을 반반으로 잡고 있다.

최근 정부는 앞의 두 가지 방안과 함께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지주회사로 내세우는 또 다른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이 주인 격으로 은행은 물론 증권.보험사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는 금융그룹화하면서 금융산업 전반의 변화를 주도하자는 방안이다.

이 방안은 산은이 최근 대우증권을 인수함에 따라 관심을 끌고 있으나, 산은이 지주회사로 자격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는 점에 논란이 있다.

정부가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서두르는 이유는 두가지다.

합병을 망설이는 민간은행들에게 모범답안을 제시하겠다는 의도와 함께 지주회사를 증시에 상장시켜 구조조정자금을 마련해보자는 의도도 담고 있다.

부실은행들을 한데 묶어 과감한 구조개혁을 추진하면 지주회사의 주가가 올라 공적자금 회수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미 거덜난 부실은행에 비해 장부상 부실부담이 없는 지주회사의 주가가 높을 것이기 때문.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미국등 선진국들의 경우 부실금융기관들을 묶은 지주회사를 상장시키면 자회사들의 주가에 비해 지주회사의 주가가 높게 형성된 예가 많다" 고 설명했다.

금융지주회사를 만들면 자회사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보다 과감하게 실시할 수 있다는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가 금융지주회사를 은행구조조정의 기폭제로 활용하려는 의지는 금융연구원이 최근 정부에 제출한 '추가 공적자금 소요추정 및 관리방안' 이라는 대외비 보고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보고서는 한빛.조흥.외환.평화은행 등 정부출자 은행의 합병을 전제로 약 8조원의 추가 공적자금 지원을 계산하고 있다.

◇ 어떻게 재편될까〓금융지주회사들과 대형 은행들이 업계를 주도하는 가운데 지주회사.대형은행군에 포함되지 못한 다른 은행들은 결국 지역은행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전망이다.

지주회사를 비롯한 대형은행들을 모두 합해 10개 이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달 30일 "일본은 최근 은행이 3~4개로 합병됐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가 작은데 은행들 숫자가 너무 많다" 이라고 말해 은행통폐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부는 금융지주회사에 포함된 시중은행들은 업무 특장점을 살려 특화시킬 방침이다.

금융 연구원 관계자는 "예를 들어 한빛.조흥.평화은행이 묶이면 한빛은행은 인터넷업무를 전담하는 은행으로, 조흥은행은 향후 중부권으로 본점을 이전한다는 전제 아래 중부권을 거점으로 한 소매금융 전문은행으로 키우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고 밝혔다.

그는 또 "지주회사에는 예금보험공사가 지분을 출자하되 경영진은 각계 각층 인사들로 구성된 인선위원회가 선임해서 정부간섭을 철저히 배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 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 통폐합을 통해 규모를 키운 대형은행들은 소매.기업금융.투자은행업등에 특화하는 전문은행으로 만들어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임봉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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