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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린다와 종쿠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프랑스의 여류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한때 로비스트로 나선 일이 있었다.

1990년대 초였다.

당시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이 공략대상이었다.

여러 차례 미테랑을 직접 만나거나 편지를 보내 프랑스 국영석유회사인 엘프가 우즈베키스탄 유전개발사업에 참여토록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졸랐다.

두 사람의 특수관계에 착안해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거액의 커미션을 조건으로 사강을 끌어들인 것이다.

"여름 내내 하늘을 바라보며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을 태운 헬리콥터가 노르망디의 제 집으로 날아올까 기다렸지만 헛수고였지요. " 93년 9월 7일자 사강의 편지에는 미테랑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배어 있다. "

'마타 하리' 로서 이 마지막 임무에 대한 용서를 당신께 빕니다" 는 마지막 구절은 '보고싶은 린다' 로 시작해 "사업상 타진할 일이 있으면 주저없이 편지 띄워주기 바라오" 로 끝나는 유명한 '연서(戀書)' 를 연상시킨다.

미테랑은 "내가 좋아하는 당신은 '마타 하리' 가 아닌 '짓궂은 소녀' 로서" 라고 짐짓 빼기도 했지만 결국은 사강의 청탁을 들어줬다.

미테랑 밑에서 두번이나 외무장관을 지낸 롤랑 뒤마도 저항키 어려운 로비의 대상이었다.

그와 미모의 여성 로비스트 크리스틴 드비에 종쿠르가 얽힌 '엘프 스캔들' 이 장안의 화제인 '린다 스캔들' 과 비교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내세워 뒤마가 프랑스제 프리깃함(艦)의 대만 수출에 극력 반대하자 엘프사는 종쿠르를 로비스트로 고용, 뒤마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대가로 종쿠르는 6천6백만프랑(약 1백억원)을 커미션으로 받았고, 그 중 일부가 뒤마에게 사례금으로 전달됐다는 것이 스캔들의 골자다.

하지만 두 스캔들은 여러 가지로 다르다.

린다 스캔들에서는 '부적절한 관계' 의 존재 여부에 대해 당사자들 얘기가 엇갈리고 있지만 프랑스판 린다 스캔들의 두 주인공은 이를 시인하고 있다.

명백한 차이다.

서로 끌린 건 사실이었다는 얘기다.

종쿠르는 베스트셀러가 된 자서전을 세권이나 출간, 사건의 전말을 까발리면서도 커미션 중 일부가 뒤마에게 전달됐다는 결정적 의혹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다물고 있다.

경제적 이해와 감정적 관계의 양립은 참으로 고통스런 경험이었다는 것이 종쿠르의 고백이기도 하다.

종쿠르는 이미 옥고(獄苦)를 치렀지만 우리의 린다 김은 아직 건재하다는 점도 큰 차이다.

뒤마는 스캔들로 헌법위원회 의장직에서 쫓겨나 곧 법정에 서야 할 처지에 몰려 있다.

하지만 그의 가정은 지금도 탈없이 유지되고 있다.

반면 우리의 가련한 '돈 후안' 은 집에도 못들어간 채 한데서 떨고 있는 신세다.

이 점도 차이라면 차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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