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잔물결 효과 … 두바이·그리스 다음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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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두바이의 채무상환 유예 선언 이후 세계 금융계의 시선은 그리스로 향했다. 국가 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선 유럽의 대표적인 빚쟁이 나라. 과도한 빚 때문에 무너진 두바이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런 시장의 ‘육감’이 현실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8일(현지시간) 그리스의 장기국채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내리고 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낮췄다. 급증하는 재정적자와 흔들리는 경제상황을 문제 삼았다.

그리스의 신용등급이 B등급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10년 만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역시 신용등급 강등을 예고했다. 이 소식에 그리스 증시가 6% 넘게 급락했고, 유로화 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등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그리스 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두바이 쇼크’보다 더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경제규모가 두바이보다 훨씬 큰 데다 같은 유로화를 쓰는 인근 유럽지역으로 위기가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두바이에서 시작된 위기가 그리스를 거쳐 부채비율이 높은 다른 나라로 번져 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신용위기가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실제 아일랜드·스페인 등은 올해 재정적자가 GDP의 1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헝가리·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들은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지난해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것이 재정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투자자들이 이들 국가에서 한꺼번에 돈을 빼갈 경우 제2, 제3의 두바이가 나타날 수 있다. 로시데일증권의 리처드 보브 애널리스트는 이를 ‘잔물결 효과(Ripple Effect)’로 설명했다. 물방울이 떨어지면 파장이 점차 커지는 것처럼 두바이·그리스의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잔물결은 동남아시아에까지 밀려올 태세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발간한 ‘의심스러운 회복(an Ambiguous Recovery)’이란 16쪽짜리 베트남 국가보고서에서 베트남의 금융위기 가능성을 거론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달러는 고갈되고 물가는 오른 가운데 재정적자가 불어나는 게 1990년대 외환위기를 겪은 말레이시아와 판박이라는 것이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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