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기수입 시스템 문제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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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군과의 공조 때문에 선정했다' 'FMS로 계약되기 때문에 좀 비싸도 미 정부가 품질을 보장해준다' . 이런 말은 군의 변명일 뿐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백두장비는 미군과의 기술적 공조가 불필요한 장비다.

둘째, 논리적으로라면 미국장비는 경쟁대상에 낄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선정됐다는 것은 로비 말고는 설명이 안된다.

셋째, 미국장비를 선택함으로써 한국은 사업비.성능.납기에 엄청난 위험을 부담하게 됐다.

넷째, 미국장비를 선택했다는 것은 정보 자생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다는 것을 뜻한다.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능력이 미국에 의해 차단되기 때문에 그 장비는 설사 들여온다 해도 구식장비로 얼마간 사용되다가 소모품이 될 전망이다.

2천2백억원이 문제가 아니다. 사업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고, 납기도 지연될 수 있다.

군은 처벌과 비난이 무서워 이런 문제들을 은닉하려 할 수 있다. 이스라엘 장비는 수많은 분쟁에서 그 성가를 발휘해 왔다.

그러나 미국장비는 종이 위에 쓰여진 '약속' 에 불과했다.

이스라엘 장비는 그 성능이 증명돼 있어서 곧바로 구매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미국장비는 연구개발부터 시작해야 하는 유령장비였다.

시험용으로 한개를 만들어 네차례에 걸쳐 시험평가를 한 후 성능이 만족스러울 때에만 생산에 들어가야 하는 장비였다.

유령장비를 현존장비와 나란히 비교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파행이지만 연구개발 절차를 밟아야 할 미국장비를 직구매 장비로 둔갑시켜 직구매 절차에 따라 구매계약을 체결한 것은 범법행위다.

FMS(Foreign Military Sales:대외군사판매) 계약이란 미국이 가격과 납기에 대해 독점권을 갖는 굴욕적인 계약이다.

미국정부가 가격을 올리라면 올려줘야 한다. 이번의 FMS 계약은 연구개발 과제를 미국정부에 의뢰했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정부가 미국의 방산업체와 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할 때는 사후 정산제 계약을 체결한다.

확정가 계약은 값과 성능을 계약서에 확정하는 계약이지만, 사후 정산제 계약은 '일단 개발해 봐라. 합법적인 비용은 100% 보상하겠다' 는 계약이다.

비용과 성능 상의 리스크를 정부가 1백% 떠안는 계약인 것이다. 미군이 직접 사용할 장비에 대해서도 이러한데 하물며 한국군이 사용할 무기에 대해 미국정부가 리스크를 떠안아 줄 리는 없다.

그 리스크는 모두 한국군이 부담해야 한다. 린다와 많은 접촉을 가진 사람들은 당시 군수차관보를 정점으로 하는 '율곡' 핵심간부들일 수 있다.

1996년 사업진행 일지를 보면 의혹은 더욱 짙어진다. 율곡역사 이래 그때처럼 숨가쁘게 사업이 진행된 적은 없을 것이다.

린다는 E-시스템사를 대표하기 전에 다른 경쟁업체들에 접근해 4백50만달러를 주면 사업을 성사시켜주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사실이라면 그녀는 혹시 E-시스템사로부터 그 정도의 돈을 받지 않았을까?

율곡사업은 38단계의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비리가 있을 수 없다고 군은 항변한다.

그러나 율곡사업은 몇명의 율곡 핵심간부들이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다.

그래도 한국에는 전문성이 모자라 아무도 그들을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율곡사업은 비밀일 수 없다. 계획을 널리 알려야 많은 업체들이 참여하고, 그래야만 자유경쟁을 통해 싸고 좋은 장비를 살 수 있다.

국가를 상대로 한 계약에 관한 법률 은 율곡사업을 밀실에서 집행할 수 없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은 사업계획을 비밀에 부쳐놓고 그 장막 속에서 소수의 업체와 군간부들로 하여금 파행을 저지르게 하고 있다.

과거에는 특검단이 가장 무서운 전문적인 율곡감시 기구였다.

그런데 이 기구는 96년 이양호(李養鎬) 장관에 의해 갑자기 해체됐다. 그리고 파행들이 속출했다.

지만원 군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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