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러브레터' 바이러스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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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필리핀에서 유포되기 시작한 것으로 지목된 러브레터 바이러스와 그 변종들은 왕성한 번식력을 과시하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4일 처음 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모두 4천5백여만대의 컴퓨터가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

민간기업.개인 사용자들의 컴퓨터는 물론 백악관.유럽의회 등 주요 기관의 컴퓨터도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피해기관 중엔 미연방수사국(FBI)과 같은 사이버범죄 수사기관도 포함돼 있어 첨단컴퓨터 보안시스템이 아직도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임을 드러냈다.

세계 각국의 피해를 돈으로 환산하면 50억달러(약 5조6천억원)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정보통신 최강국 미국은 러브레터 바이러스의 주요 '번식지' 였다.

애틀랜타의 CNN본사에서는 4일 오후 6시(현지시간)쯤 한 직원의 컴퓨터 전자우편함에 최초로 침투한 바이러스가 두 시간만에 본사 서버의 e-메일 배신기능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러브레터 바이러스는 백악관.연방의회.국무부.중앙정보국(CIA) 등 주요 국가기관의 메인 컴퓨터는 물론 국방부의 비밀 컴퓨터망에도 침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염당한 네곳의 비밀 컴퓨터망 가운데는 군사용 컴퓨터에 대한 바이러스 공격 차단과 대책을 전담하는 '컴퓨터 네트워크 방위 특별위원회' 의 컴퓨터도 포함됐다.

국방부는 감염에도 불구하고 군사작전의 수행에는 실질적인 피해가 없었다는 사실로 자위해야 했다.

유럽에서도 거의 모든 나라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브리티시 텔레콤.보다폰 등 정보통신기업도 예외없이 당했으며 브뤼셀의 유럽의회 및 영국.덴마크 등 각국 의회와 독일.프랑스의 외무.재무부 전산망에서도 전자우편 시스템이 정지되는 등의 피해가 보고됐다.

영국의 경우 기업 전산망의 30% 이상이 감염된 것으로 조사됐다.

다국적 금융.증권회사 등이 밀집한 홍콩에서는 주요 기업.기관 컴퓨터의 감염률이 60%에 육박했다.

일본의 경우 '황금연휴'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고급백화점 체인망 미쓰코시 등 6일 현재 2만7천여건의 감염사례가 확인됐으며 연휴가 끝나는 주초부터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진원지인 필리핀과 대만.싱가포르.태국 등 동남아 각국에서도 기업.언론기관 등의 피해가 보고됐다.

정보통신의 후진지역인 아프리카와 남미지역에서도 예외없이 러브레터 바이러스에 의한 피해와 혼란이 잇따랐다.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뉴욕의 유엔본부 등에선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유엔 대변인은 5일 "러브레터 바이러스에 대비, 약 한시간 동안 전자우편 시스템을 미리 꺼 놓았다" 고 설명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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