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지구촌 동심] 上. 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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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5일은 제78회 어린이날. 테마파크에 놀러 가자고 떼쓰는 어린이도 있지만 지구촌에는 태어날 때부터 절대빈곤이나 질병과 힘겹게 싸워야 하는 어린이만 수억명에 달한다.

선천성 에이즈와 사투를 벌이고 빵 한덩어리를 구하기 위해 몸을 팔거나 하루 12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는 지구촌 어린이들의 모습을 통해 어린이날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인도의 고도(古都) 델리 도심에서 북쪽으로 45㎞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마을 샤바드.

오밀조밀한 영세상점이 빼곡이 들어선 시장이 이방인의 눈길을 끄는 이 마을은 저소득층 4만3천여명이 모여 사는 전형적인 슬럼가 중 하나다.

세살때 이곳으로 이사온 소녀 리마(11)는 2년전 아버지가 병으로 숨진 뒤 생계가 막막해지자 옆집 아줌마를 통해 윤락녀로 나섰다.

"돈을 벌게 해줄테니 아줌마하고 함께 일하자기에 무슨 일이라도 하면 적어도 굶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섰습니다.

아줌마가 소개시켜준 '일터' 는 마을 공장 뒤켠의 섬유 적재창고였고 '손님' 은 1주일에 한두번씩 트럭을 몰고 오는 30대 트럭운전기사였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무섭고 놀라 많이 울었지만 동생들에게 줄 음식을 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계처럼 일을 계속했습니다."

아홉살때의 첫 경험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리마가 '일' 을 나가 벌어들이는 돈은 한번에 50루피. 우리 돈으로 1천5백원쯤 된다.

리마는 이날도 동네 자전거수리점 공구더미에서 아줌마가 소개해 주는 아저씨 품에 20여분간 안기고 번 돈으로 4명의 동생들에게 줄 바나나와 망고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두살난 딸을 데리고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시바의 나이는 14세.

3년전 결혼을 했지만 결혼전 매춘을 했던 과거가 드러나 남편의 학대가 심해지자 갈라섰다.

시바는 아버지의 매질 속에 윤락을 했고 결혼전 일곱번이나 낙태를 해야 했다. 그녀가 벌어오는 한달 2천루피가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샤바드에는 '매춘' 이나 '윤락' 의 뜻조차 모르는 열살 안팎의 철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빵 한덩어리를 위해 몸을 팔고 있다.

이들은 대개 한달에 2천루피 정도를 벌고 이 돈은 모두 가족의 생계유지에 쓰인다.

쌀 1㎏의 가격이 25루피 정도로 대여섯명의 가족이 근근이 끼니를 이어가는 정도의 수입이다.

지난달 중순 인도 국영 '델리텔레비전' 에서는 실제로 매춘에 종사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인터뷰를 공개, 어린이 매춘의 실체를 고발하면서 인도사회에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러나 당국의 적극적인 단속이나 계도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샤바드에서 매춘 어린이 계도사업을 벌이고 있는 국제 어린이 원조기구 플랜인터내셔널의 상기타(28.여)에 따르면 이 마을 여자어린이 중 절반에 달하는 2백여명이 현재 매춘을 하고 있다.

그녀는 "부모들은 자신의 딸이 매춘으로 돈을 벌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를 모른 척하거나 오히려 매춘을 강요하고 있는 믿기 어려운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고 말했다.

40도를 웃도는 5월의 인도, 현기증나는 빈민가 뒷골목에서는 수십만명의 '리마와 시바' 가 오늘도 가족의 저녁식탁을 위해 몸을 팔고 있다.

델리(인도)〓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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