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감독·학자들의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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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지난달 28일부터 4일까지 열리고 있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대안 영화' 특히 '디지털 영화' 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각국에서 출품된 디지털 영화를 디지털 영사기로 상영했을 뿐 아니라 관련 학자등이 참석한 심포지엄도 열렸다.

특히 영화제 측으로부터 제작비(편당 5천만원)를 지원받아 각각 30분짜리 단편을 완성한 한국의 박광수.김윤태, 중국의 장위엔(張元) 감독은 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디지털 영화는 영화의 미래" 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영상 관련 장비들이 호환되지 않는 관계로 후반 작업에 애을 먹었다" 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3인3색' 은 중국의 장위엔(진싱 파일), 한국의 박광수(빤스 벗고 덤벼라), 김윤태(달 세뇨-밤의 이름) 감독이 '3N(New Generation, New Technology, Network)' 을 화두로 각각 30분씩 찍은 세편의 단편영화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은 작품. '

'빤스 벗고 덤벼라' 를 만든 박광수 감독은 "촬영은 하루만에 끝냈지만 편집 등 후반 작업에 4개월이 걸렸을 만큼 필름으로 작업할 때와는 공정부터 달랐기 때문에 색다른 경험이었다" 며 "즉흥성과 사실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이 디지털 영화의 특징" 이라고 말했다.

'달 세뇨-밤의 이름' 을 출품한 김윤태 감독은 "디지털 영화는 아직 초보 단계라 실험적 성격이 강하며 완성도 보다는 작업 과정에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진싱 파일' 의 장위엔은 "불과 2, 3년 전만해도 인터넷의 발전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10년 뒤에는 영화가 필름과의 인연을 끊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이들은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또는 백남준이든 피카소든 예술 작품은 결국 형식보다는 내용이 문제" 라는데 동의하면서 "디지털의 미래는 매우 밝다" 고 말했다.

한편 일본의 야구치 시노부 감독이 출품한 디지털 영화 '원피스 프로젝트' 는 독특한 촬영과 이야기 구조로 관심을 끌었다.

14개의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로 각각의 단편은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은 채 한 번의 커트도 없이 '원 씬 원 쇼트' 로 찍었다.

그는 "디지털이 좋은 건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돈을 대는 사람들이 이런 배우를 써라, 저런 음악을 써라고 참견하는 걸 막을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에서도 비디오나 고화질(HD)카메라로 만드는 영화들이 있지만 아직 보편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면서 "언젠가는 디지털이 필름을 능가하는 매체가 되겠지만 중요한 건 결국 어떤 이야기를 담느냐가 아니겠느냐" 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오후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디지털 영화의 미래에 대해 보다 조심스러운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폴 윌먼 교수(미국 나피에르대)는 디지털이 영화 환경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보는 최근의 분위기에 대해 좀 더 신중하고 냉정하게 사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영화는 셀룰로이드(필름) 영화의 대안이 아니라 하나의 물리적인 매체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디지털에 대한 논의가 갑자기 무성해진 이면에는 새로운 테크놀러지를 판매하려는 대기업의 의도가 숨어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인터넷 등을 통해 디지털 영화가 확산될 수록 어떤 이미지가 공적으로 유통될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할 안목과 독해력이 보다 중요해 질 것이라면서 디지털 이미지의 남용을 경계했다.

UCLA의 피터 월렌 교수는 디지털 기술이 해방적인 측면을 갖고 있는 걸 부인할 수는 없지만 중앙 집중화된 정치.경제.군사력의 도구로도 기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디지털 전송방식이 배급및 상영에 변화를 초래하겠지만 과연 디지털 전송 방식이 프린트 운송비보다 저렴할 지도 의심스럽다며 디지털 영화가 필름 영화를 대체할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전주〓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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