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공익과 재미 사이 ‘일밤’신장개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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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새 단장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가 무난한 첫발을 뗐다. 공익 버라이어티 전문 김영희 PD가 지휘봉을 잡아 관심을 모은 ‘일밤’은 6일 첫 방송 시청률이 AGB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 8.5%, TNS미디어코리아 집계 8.3%(각각 전국 기준)를 기록했다. 김 PD가 목표한 두 자리 대엔 못 미쳤지만, 애국가 방영시간과 맞먹었던 종전 시청률은 크게 뛰어넘었다. KBS2 ‘해피선데이’와 SBS ‘패밀리가 떴다’가 양분하던 일요일 저녁 예능 시간에 대항마를 내는 데 일단 성공한 셈이다.

그 중 논란이 됐던 코너는 ‘대한민국 생태구조단 헌터스’(이하 ‘헌터스’)다. “직접적인 멧돼지 사냥은 없다”는 제작진의 해명에도 “생명체를 오락 소재로 삼았다”는 동물보호단체 ‘카라’ 등의 항의가 빗발쳤다. 뚜껑은 연 ‘헌터스’는 이런 비판을 최대 수용한 편집으로 답했다.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와 인명 위협 등을 조명하되 “동물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피해를 주니 어쩔 수 없다”는 할머니의 말을 반복해 들려줬다.

작전 목표를 포획에서 축출로 바꾸고, 심지어 다큐멘터리 같은 내레이션을 통해 ‘공익 의도’를 직설화법으로 구사했다. 하지만 농가 피해를 어떻게 덜어줄지 모호한 상황에서 “그래도 우리는 공익을 생각합니다”를 강조하니, 결과적으로 비판하는 측이 보기에도 “논점이 뭔지 모를 어정쩡한 방송”(‘카라’ 정호 사무처장)이 됐다. 애초 홍보했던 ‘유해동물 야생 멧돼지와 한판 승부’에서 한참 비껴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헌터스’의 곤경은 달라진 방송 현실에서 ‘사회적 예능’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출연자들의 한바탕 웃음과 과장된 몸짓을 앞세우는 ‘리얼 버라이어티’와 달리, ‘일밤’은 시청자들과의 접점에서 감동을 찾으려 했다. “예능에서 웃음 그 이상을 주고 싶다”는 의도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발언권이 커진 네티즌은 방영 전부터 PD의 편집권에 왈가왈부하고, 김제동 하차 논란에서 보이듯 ‘예능 이슈’는 종종 정치 쟁점으로 변질된다. 공익을 내세운 ‘헌터스’가 바로 그 이유에서 공격 받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돋보인 코너는 오히려 ‘우리 아버지’였다. 퇴근길 아버지들 사연에 귀 기울인 이 코너는 연예인들끼리의 ‘유사 가족’(‘우리 결혼했어요’ 등)이 넘쳐나는 예능에서 ‘진짜 가족’을 보여줘서 뭉클했다. 경제위기로 힘겨운 우리네 삶의 리얼 이슈도 은근히 전달됐다. 재미만큼이나 공익도 직접 강조해선 느낌이 없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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