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코드 2000] 9.온돌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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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등 따습고 배 부르니 ~을 한다' 는 말이 있다. 사람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등 따습고 배부른 기초 욕구가 충족되고 나서 다음 행위를 하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에게는 '등 따스우면 배 부르다' 는 속담도 있다. 추운 날 설설 끓는 방에 누워 있으면 배고픈지조차 모른다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에게 따스함은 먹는 것보다 더 원초적인 욕구다.

신라 선덕여왕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땔 나무와 양식을 골고루 나눠주는 덕을 쌓아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았다. 땔나무는 음식을 끓이고 몸을 덥힐 뿐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하게 하는 불을 만든다.

그 땔나무의 불과 돌이 만나 움집의 아득한 옛날부터 오늘 아파트 시대까지 우리 민족의 몸과 마음을 따뜻이 감싸주고 있는 것이 온돌이다.

온돌을 덥히는 땔나무는 산업화에 따라 연탄으로, 경유로, 도시가스로 달라졌지만 방바닥을 덥히는 온돌의 온기는 여전하다.

40대 이상 세대들은 아궁이와 부뚜막, 아랫목이 까맣게 달아오른 온돌방의 추억을 지금도 따습게 간직하고 있다.

찬 봄비가 주룩주룩 내려 몸과 마음이 눅눅해지면 그때로 돌아가 아궁이에 불도 지피고 아랫목에서 등도 '지지고' 싶다. 이런 민족의 정서가 세계에 유례없이 아파트에 온돌방.거실을 설치했는가 하면 온돌 침대를 낳고 도심의 찜질방이 성황을 이루게 했다.

'고구려 사람들은 짚으로 지붕을 잇고, 겨울에 긴 구들을 만들어 따뜻하게 하였다' 고 당나라 역사서 '신당서(新唐書)' 는 적고 있다. 당나라에는 없는 고구려만의 특색이었던 것이다.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발굴된 땅을 깊이 파내려간 움집 한가운데에도 불을 지피는 노(爐)가 갖춰져 있다.

고고인류학자들은 난방.취사.조명 기능을 했던 이 노가 가옥의 구조 변화와 함께 온돌로 발전해간 것으로 보고 있다.

"복합 기능을 가진 노가 청동기 시대에 들어와 난방을 위한 방 가운데의 노와 취사를 위한 구석의 부뚜막으로 나뉘게 되고 다시 노와 부뚜막이 합쳐 아궁이.구들.굴뚝으로 이어지는 오늘의 온돌형태로 발전했다" 고 장경호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말한다.

삼국이 정립되기 훨씬 이전인 기원전 3세기께부터 우리는 온돌에 등을 덥히며 살아온 것이다.

온돌 구조는 크게 불을 때는 아궁이, 불길과 연기가 지나가는 고래, 고래를 덮는 구들장과 굴뚝으로 나뉜다. 이런 온돌에도 수천년 동안 궁리하고 발전시켜온 조상들의 지혜가 구석구석 배어 있다는 것이 김남응(단국대 건축공학)교수의 설명이다.

"아궁이와 고래 사이로 불이 넘어가는 부넘기 혹은 불고개라는 턱을 둔 것은 열기와 연기의 역류를 방지하며 고래 속으로 잘 들어가게 하며 다시 고래가 끝나는 곳을 우묵하게 낯춘 개자리는 열을 마지막까지 활용하면서 굴뚝 등을 타고 들어온 빗물의 역류도 막아낸다" 고 김교수는 설명한다.

불길을 많이 받는 아랫목은 두꺼운 구들장, 윗목은 좀더 얇은 구들장을 얹고 그 위에 황토 등의 흙을 바른 것이 온돌방이다. 불을 때어 구들을 덥히는 전통 아궁이는 산업화와 함께 도시에서 연탄 아궁이로, 다시 보일러로 바뀌었다.

고래도 이제 불길이 아니라 뜨거운 물이 지나가는 파이프나 전기 열선으로 대체됐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온돌의 전통을 악착같이 계승해 등을 따습게 하고 있는 유일한 민족이다.

"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라는 우리의 인사는 등 따습게 잘 주무셨냐는 말입니다. 온기가 있는 것을 우리는 생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등골이 식었다고 하지않습니까. 방에 누워 따스한 온기를 받으며 우리는 살아있음을 편안하게 느낍니다. 불과 돌과 흙이 어우러져 순환의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 온돌입니다."

돌 문화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윤재근(한양대 국문학)교수는 나무와 불과 돌과 흙이 순환하며 빚어내는 온기, 태초의 생명이 온돌이고 우리는 거기에 누워 매양 편안하게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곧 불이면서도 어머니 양수 속 같은 재생의 공간이 온돌방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비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무스름한 운모류의 판석은 열에 강하고 열전도율도 낮아 오랫동안 열을 머금을 수 있어 구들장으로 많이 쓰인다.

이 판석이 열을 받으면 원적외선이 많이 발생한다는 연구도 나왔다. 따스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기에 바닥난방인 온돌은 스팀난방 등에 비해 아래로부터 위까지 따스하게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난방법이다.

이런 온돌난방을 현대화.세계화하기 위해 1996년에 구들학회(회장 최영택)가 창립됐다. 건축.열 역학.문화 관련 교수와 온돌개량 사업가 등 3백여명의 회원을 가진 이 학회는 한해 두차례 세미나 등을 개최, 우리 민족 문화와 생명의 뿌리인 온돌을 탐구하며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평생을 온돌 현대화를 위해 힘써온 최영택 회장은 "독일.프랑스.일본 등에서는 바닥난방이 과학적이며 에너지 절약에도 도움이 돼 공업회 등을 결성하고 있는데 정작 종주국인 우리는 등한시하고 있다" 며 사라져가는 구들 명장들을 한시바삐 인간문화재로 지정할 것을 요망했다.

"온돌은 우리 민족 생명의 그릇이며 문화의 바탕" 이라는 김남응 교수의 말이 아니더라도 현대인들은 따스한 온돌에서 생명의 위안을 얻는다. 그 따스함이 현대의 스트레스를 불끈 땀으로 밀어내며 또다시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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