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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와 박근혜의 역사적 담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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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대통령(MB)이 늦게나마 고해성사를 통해 제 길을 찾은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다. 여권은 여론을 얻기 위해 올 코트 프레싱(all-court pressing)에 나섰다. 그러나 압도적인 여론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중요한 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선택이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은 수정안에 대해 계속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이 반대해도 박근혜만 도와주면 MB정권은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MB와 박근혜의 역사적 담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MB는 어떻게 해야 박근혜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MB는 박근혜의 현실적인 파워부터 인정해야 한다. 지난달 27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MB는 “한나라당에는 주류·비주류가 없다”고 했다. 이는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다. 박근혜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강력한 비주류다. 많은 비주류가 있었지만 그처럼 결정적으로 권력과 대립하지는 못했다. 박정희 권력 시절 김종필(JP)은 대표적인 비주류였다. JP는 내내 탄압받았다. 겨우 후계자가 될 만하니까 박정희가 죽고 세상이 바뀌었다. 전두환 시절 비주류 노태우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노신영·장세동을 비롯한 전두환 친위부대가 그를 견제했다. 노태우는 반기(叛旗)는 꿈도 꾸지 못했다. 6·29 선언도 반항이 아니라 전-노의 합작품이었다.

노태우의 비주류는 김영삼(YS)이었다. YS는 후계권력을 놓고 노태우의 넥타이를 잡고 흔들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정책에 요란하게 항거한 적은 거의 없다. YS의 비주류는 JP였다. 그는 순종적인 비주류였다. 최형우의 상도동계는 그를 압박했고 JP는 일찌감치 민자당을 떠나 자민련으로 독립했다. 김대중(DJ)에게도 김상현·정대철이라는 비주류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제대로 항거도 못하고 견제만 받았다. 노무현에게는 나중에 당 전체가 비주류가 됐다. 노무현 자체가 권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박근혜를 역사상 가장 강력한 비주류로 만든 이는 MB 자신이다. 대선 때 박근혜는 MB를 도왔다. MB는 그런 박근혜를 국정의 동반자로 예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건 박근혜를 넘어 국민에게 한 약속이었다. 지난해 공천학살 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박근혜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했다. ‘박근혜 비주류’는 사실상 그때 태어난 것이다.

‘박근혜 비주류’는 그래서 MB의 원죄다. 국정의 동반자로 흡수됐다면 박근혜는 그렇게 극한적으로 세종시 수정을 반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MB가 박근혜와 진솔하게 상의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박근혜의 소신이 유동적이란 게 아니라 MB의 진정성을 대하는 그의 ‘심폭(心幅)’이 달랐을 거란 얘기다.

이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MB는 과거와 현재를 모두 인정해야 한다. MB는 “부끄럽고 후회스럽고 죄송하다”며 국민에게 진정성을 보였다. 똑같이 박근혜에게도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생일케이크와 특사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국정의 동반자 약속을 실천하면서 국가를 위해 같이 나가자고 호소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정한 차기 경쟁을 약속해 주어야 한다. 공천학살 같은 탄압은 다신 없을 거라고 약속해 주어야 한다. MB가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래서 박근혜가 끝내 ‘세종시 십자가’를 거부하면 이명박 정권은 안개의 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킹콩 섬에 다가가는 뉴욕의 화물선처럼….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