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 현장서 뛸 ‘선수’가 안 보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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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호 16면

2007년 7월 과테말라 IOC 총회에서 이건희 전 회장이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프레젠테이션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인다.

지난달, 강원도 평창의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와 관련한 움직임들이 있었다. 11월 17일 평창올림픽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김진선 강원도지사가 “평창의 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건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의 사면을 건의하겠다”는 내용의 기자간담회를 했다. 이틀 뒤 역시 공동위원장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정식으로 이건희 위원의 사면을 청원했다.

평창 겨울 올림픽 유치 세 번째 도전, 이번에도 장담 못하는 이유

그리고 20일, 이명박 대통령이 평창을 방문했다. 유치위 측은 “겨울올림픽 유치는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고, 이제 공식적인 국가 어젠다가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강원도 평창 겨울올림픽 후보지를 방문해 관계자를 격려했다.

MB 평창 방문으로 유치활동 탄력
한국은 1988년 서울 여름올림픽에 이어 2002년 월드컵을 개최했고,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국제 스포츠 ‘빅3’를 모두 개최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지난해 산업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는 미국·독일·영국·일본·프랑스·캐나다·중국·이탈리아·네덜란드에 이은 세계 10위다. 국가 브랜드 가치는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되지만 서울올림픽이 극동의 조그만 나라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고, 한·일 월드컵에 의해 업그레이드됐다는 데에 이견을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도 되지 않던 1981년,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한 것과 월드컵 개최국이 된 것은 스포츠 외교의 승리였다. 스포츠 외교는 크게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는 스포츠를 통한 국위 선양과 국익 극대화고, 둘째는 스포츠를 외교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2018년 겨울올림픽, 2020년 여름올림픽, 2022년 월드컵 유치를 계획하고 있다. 평창은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2010년 올림픽은 캐나다 밴쿠버에, 2014년은 러시아 소치에 졌다. 두 차례 모두 차점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이번에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그럴까. 평창은 독일의 뮌헨, 프랑스의 안시 등과 경쟁해야 한다. 겨울스포츠 인프라에 관한 한 평창은 유럽의 어떤 도시와 비교해도 열세다. 겨울스포츠 인구와 열기, 경기력을 따져 봐도 앞설 게 없다.

지금까지 한국이 열세를 딛고 큰 대회나 회의 유치에 성공한 것은 선거에 강했기 때문이다. IOC가 주관하는 대회나 회의는 결국 100명이 약간 넘는 IOC 위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얼마나 많은 위원을 우리 편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것이다.

그럼 현 상황은 어떤가. 장점이 오히려 단점이 됐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IOC 위원은 109명. 이 중 유럽이 가장 많은 47명이고, 아시아(22), 아메리카(19), 아프리카(17), 오세아니아(4) 순이다. 한국은 한때 김운용·이건희·박용성 등 3명의 IOC 위원이 활동했다. 86년 IOC 위원이 된 김운용 전 위원은 집행위원, 부위원장을 거쳐 2001년 IOC 위원장에 도전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그러나 2005년 공금횡령죄로 수감 상태에서 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2002년 국제유도연맹 회장 자격으로 IOC 위원이 된 박용성 전 위원(현 대한체육회장)은 2007년 국제유도연맹 회장을 그만두면서 IOC 위원 자격도 잃었다.

96년 IOC 위원이 된 이건희 위원은 위원직을 유지하곤 있지만 배임 등 혐의로 지난해 1, 2차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자발적으로 자격정지를 요청한 상태다.

현재는 지난해 선수위원으로 당선된 문대성 위원 1명만 활동 중이다. 그러나 임기제인 선수위원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독일은 토마스 바하 부위원장 등 3명의 IOC 위원이 있다.

어떤 면을 봐도 평창에 유리한 점이 없다. 더구나 예전과 달리 지금은 IOC 위원만이 위원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 조양호 공동위원장이 이건희 위원의 사면, 복권을 요청한 배경이 이것이다.

IOC 위원들의 성향을 보여준 사건이 있다. 지난 10월 코펜하겐 IOC 총회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부인과 함께 참석했다. 자신의 고향인 시카고의 2016년 여름올림픽 유치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시카고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시카고는 1차 투표에서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갔다. 스포츠 외교의 특징이 바로 오랜 시간에 걸친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전력으로는 겨울올림픽이나 여름올림픽 유치는 거의 물 건너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통령과 유치위원장, 외교관들이 나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돈을 쏟아 붓는다고 될 일도 아니다. 그러면 결론은 포기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러시아의 IOC 위원인 비탈리 스미르노프가 한국의 외교관에게 했다는 조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스미르노프는 “한국이 올림픽 등 국제대회를 유치하려면 첫째 (가장 숫자가 많은) 유럽의 IOC 위원을 공략하고, 둘째 IOC 위원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인사를 적극 활용하라”고 했다.

그런 차원이라면 이건희 위원에 대한 사면, 복권은 꼭 필요하다. IOC 위원은 IOC 위원만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으므로. 더구나 올림픽 공식파트너인 삼성의 유럽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두 번째 영역으로는 김운용 전 위원을 들 수 있다. 20년간 IOC의 파워맨이었던 김 전 위원은 지금도 30명 정도의 현역 IOC 위원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전 위원은 지난해 복권됐기 때문에 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다. 겨울올림픽 유치에 두 차례 실패하고 나서 당시 유치위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 “2010년은 김운용 때문에 안 됐고, 2014년은 김운용이 없어서 안 됐다.” 문제점을 알았다면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109명에 의해 결정되는 스포츠 외교의 세계. IOC를 상대로 한 한국의 스포츠 외교는 최근 1∼2년간 공백기였다. 그러는 사이 과거 친한파였다가 지금은 반한파가 돼버린 IOC 위원도 몇 명 눈에 띈다. 위원 1명은 2표의 위력을 가진다. 내 편이냐 상대편이냐에 따라. 그 한 명을 잡기 위해선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스포츠 외교관, 전략적으로 키워야
여기서 한 가지 숙제가 남는다. 대한민국 스포츠 외교의 방향이다.

엘리트 외교로 갈 것인가, 저변 확대로 갈 것인가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저변 확대가 바람직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스포츠 외교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엘리트 전략을 고수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스포츠 외교관은 전략적으로 키워야 한다.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라야 한다. 정권이 바뀐다고 사람이 바뀌면 안 된다. 길게 가야 한다. 일단 영어를 기본으로 외국어에 능통해야 하고, 스포츠에 일가견이 있어야 한다. 선수 출신이면 더 좋고, 스포츠 행정 전문가도 좋다.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국제 스포츠 대회를 유치하려는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아무 대회든 ‘유치만 하면 좋은 때’는 지났다. 투자 대비 효율을 생각해야 한다. 정부가 명쾌하게 교통정리를 해주지 않으면 예산 낭비는 물론 대한민국의 위상이 오히려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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