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이웃사촌'같은 대덕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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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과학의 날인 지난 21일 오후 5시, 한국과학기술원 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창업보육센터. 퇴근 길의 시민들이 하나 둘 모였다. 대덕연구단지의 과학자와 시민들이 만난 자리였다.

처음에는 서로 잘 모르는 관계라서 분위기가 서먹했다. 모임을 주선한 정규형(44.약사)씨가 "대덕연구단지가 출범한 지 20여년만에 처음 시민들이 마련한 과학자의 생일 잔치" 라며 건배를 제의했다.

이 자리는 정씨를 비롯해 40대 중반의 대전 토박이들이 한푼 두푼 모아 마련했다. 전국에서 박사 인구밀도가 가장 높고 첨단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과학도시 대전에 어릴 적부터 살았지만 과학과는 거리가 있었고 연구단지는 딴 세상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지역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는 연구단지와 지역사회가 하나로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뜻있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과학자들에게 알려지며 화답이 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소 선임 연구부장으로 지난해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1호 발사를 책임졌던 유장수 박사가 특강을 자청했?

제작에서 발사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비디오와 위성개발 관련 뒷얘기를 들려주며 과학과 시민의 만남을 기렸다. 유박사는 "30년 가까운 연구원 생활 중 처음 시민들과 만났다" 며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과학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고 약속했다.

연구원 출신으로 벤처기업을 창업한 송규섭 사장은 대덕밸리의 비전을 발표했다.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세워진 대덕밸리는 지역주민과 연구원.벤처기업인의 긴밀한 교류로 생명력을 얻고 더욱 번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같은 장소에 지역내 벤처기업인과 과학자.주민들이 만나 벤처기업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투자 설명회.세미나 등을 개최하는 벤처 카페 '아고라(광장)' 를 5월초에 열기로 했다.

시민과 과학자들이 가슴을 열고 어우러져 이야기를 나누면서 밤이 깊었다. 바로 이웃에 살면서 연구단지에 처음 왔다는 시민도 있었다.

연구단지에서 10년 넘게 일했지만 '서울 사람' 으로 생각했는데 오늘에야 '대전 사람' 임을 느꼈다는 과학자도 있었다. 참석자 모두 과학의 대중화와 진정한 지역공동체 형성의 의미를 새기는 자리였다.

이석봉 중부취재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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