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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나랏빚으로 펑펑 쓸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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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관이 무엇인지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물론 많은 기업인이 궁금해 한다. 지난해 국회연설에서 피력했듯이, 필자가 느끼기에 대통령은 "경제는 시간이 가면 좋아진다"는 시간회복론을 신봉하는 것 같다. 따라서 시장개혁론자들이 주장하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위기론에 대한 개혁적 처방보다는 비경제 부문에 대한 개혁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는 것 같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비경제전문가로 임명한 것이 그 상징적 조치로 해석된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경제 부문보다는 비경제 부문의 개혁에 더 무게를 둘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반드시 경제가 나빠지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비경제 부문의 개혁이 더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서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열린우리당도 말로는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경제에 큰 부담을 주는 정책입안이 주(主)가 되는 자기모순적 국정운영을 해서는 안 된다. 아프리카나 남미국가들에서 보듯이 경제는 결코 시간이 간다고 자동적으로 나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2008년까지 5년간 분배중심의 재정운용을 골자로 한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을 보면 정부는 우리나라 경제가 올해부터 2008년까지 5년간 매년 5%대의 실질성장률(경상성장률 8%)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총 세입 규모가 매년 7.4%씩 증가해 5년 동안 1231조원의 재원이 확보될 것으로 추산했다.

그리고 재정적자가 나지 않도록 매년 지출을 6.3%씩만 늘리면 5년 동안 1109조원을 쓰게 되고 남는 돈으로는 국가 빚을 줄이고 167조원으로 예상되는 11개의 대형 국책사업을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다는 장밋빛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계획을 보고 전문가들은 참여정부 핵심세력들이 돈을 벌어보기보다는 주로 써 본 경험만 있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우선 지난 대선 때의 공약(空約)인 7%의 성장률에서 보았듯이, 이미 연구기관들이 추정한 4%의 잠재성장률을 매년 1%씩 초과 달성할 수 있겠는지에 대한 의문이 많다.

정부가 한정된 재원을 성장잠재력 증대에 필요한 재정투자보다는 불요불급한 대형 국책사업 등에 우선 배분하게 되면 5%의 성장은 달성이 불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5%의 성장은 시간이 지나면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물론 경제주체 모두가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중기재정계획은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기술혁신이나 정보화, 중소기업 예산보다는 복지노동이나 국방분야 예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성장잠재력이 나아질 전망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이번 계획에 의해서는 성장잠재력이 확충될 수 없기 때문에 5% 성장은 불가능해 보이며 이를 전제로 세운 계획은 모두 허사가 돼버리고, 결국 대국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하니 국가부채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장잠재력 확충 없이 그 많은 국책사업을 벌이면서 재정건전성도 회복하고 다 같이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또 우리 재정은 이미 투입된 165조원의 공적자금의 상당부분에 대한 이자 지급으로 인한 경직성 지출로 유연성이 떨어지고 있다. 반면 대형 국책사업은 최초 계획보다 수배 내지 수십배의 비용이 소요됐던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참여정부가 벌이고 있는 수도 이전과 같은 대형 사업들로 인해 앞으로 지출될 재정부담은 엄청나게 늘어나고 이로 인한 국가부채는 조만간 우리 경제의 암적 요인으로 등장할 개연성이 크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의 핵심세력들은 이제부터라도 무턱대고 돈 쓰는 정책보다는 알차게 돈 벌 수 있는 성장잠재력 확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경영학